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둥대는금붕어 Oct 20. 2020

시라는 게 다른 게 아니구요

시인의 사랑, 2017, 김양희 作

 누구나 한번쯤 시인이 되고 싶어 할까요? 적어도 저는 그런 적이 있습니다. 시인들이 멋져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솔직하고 생각도 깊고 말도 잘했습니다. 좋은 시는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고민하게 하고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짚어주기도 했구요. 아하. 사랑이란 그런 거구나. 슬픔이란 그런 거구나. 헤어진다는 건 이런 거구나. 아하 아하. 그런 걸 생각하다 보면 시가 금방 읽혔고,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를 읽는 시간도 줄어들고 시인이 되고 싶단 생각도 사라져갔습니다.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먹고 살 걱정을 하다 보면 뜬구름 잡는 소린 줄어들고 시 같은 건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시는 삶과 가까이 있을수록 쓰기 쉽다는 걸. 영화 속에서 강순이 그러하듯.



 강순은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입니다. 시를 쓰는 남편 택기 대신 돈을 벌고 시를 사랑하는 남편을 사랑하고 그와 아이를 낳아 오손도손 살고 싶습니다. 그가 학교에서 수업을 할 동안 가게를 보고 저녁 먹잔 말엔 듣는둥마는둥 게임을 하는 그의 입에 고기를 넣어줍니다. 택기에게 돈 같은 돈은 언제 벌어올 거냐 따지지도 않습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속 터질 노릇입니다.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이 집구석에서 피파나 하고 있는데 성질 한번 내질 않다니.  대신 강순은 명확하게 말합니다. 남들 다 하는 걸 나도 하고 싶다고. 돈 버는 건 재미없다고. '아이'가 갖고 싶다고.


 



 택기는 내키지 않습니다. 하다 못해 정자 수도 많지 않아 인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강순은 예민해진 택기의 마음을 이해해줍니다. 택기를 달래기 위해 사온 도넛이 택기의 마음을 다른 길로 새게 하지만 어쨌거나 강순은 늘 택기에게 다정합니다. 늘 심각한 택기와는 반대로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지만 강순의 말과 행동은 가벼워 보이지 않습니다. 택기에게 하는 모든 말과 행동에 사랑이 느껴집니다. 참 신기합니다. 영화를 보는 제가 강순을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날 막 만지고 빨고 핥고 내 아랫도리에 얼굴 처박고 내 몸속까지 끝까지 밀어넣고 내 끈적한 침냄새 맡고 내 똥도 먹을 수 있어? 
뭣도 모른다..
처절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야. 난 죽어, 너 없으면.



 시인인 택기보다 강순에게 되려 시인의 면모가 보이는 대사입니다. 미적지근한 택기의 반응을 알고도 모른 척,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강순이 사는 곳은 제주도입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 동네, 쉬이 떠날 수 없는 제주도에 사는 강순에게 아이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안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한두마디씩 얹을 때마다 강순은 슬퍼집니다. 애 없는 게 죄도 아닌데 왜 자꾸만 고개가 숙여질까요.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사람이 있는 곳에서 강순은 남들이 다 하는 걸 하고 싶어집니다. 그것이 강순이 삶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남들과 다르지 않게 차근차근, 성실하게 사는 것. 


 그런 강순의 마음을 택기는 알아주지 못합니다. 택기는 택기 안의 시상만으로도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강순도 그걸 모르지 않습니다. 택기가 자신보다 시를 더 사랑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순은 말합니다. 난 네가 없으면 죽는다고. 너 내 안에 들어오고 싶느냐고. 나는 너를 받아들이고 싶은데 너는 너를 내게 줄 수 있느냐고. 그러니까 너도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느냐고. 고백한 뒤 강순은 쑥스러운 듯 노래합니다. 이런 게 사랑일까. 


 솔직한 강순은 그래서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함부로 아름다운' 것, 모호하고 꿈 같은 것을 사랑하려는 택기와 다르게 강순은 당장 눈 앞의 것, 물고 빨고 핥고 아랫도리에 얼굴 처박는 것을 사랑이라 말합니다. 택기가 진저리를 치는 더러운 말이 사실은 그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과 더 맞닿아있는 것입니다. 




호모짓하면 다 랭보가 된다던? 그것도 다 몸매가 돼야 아름다운 거야. 너는 이 세상에서 제일 추하고 뚱뚱하거든...
넌 내가 뭐라고 생각해? 나는 네 친구도, 엄마도, 제자도 아닌 아내야. 나 임신했어. 그러니까 그냥 닥치고 쭈그리고 살아 병신아.



 택기가 소년을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 강순은 처음으로 택기에게 말합니다. 나는 너의 '아내'라고. 택기 역시 이 집에서 할일이 있고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강순은 일찍이 택기에게 경고했지요. 너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니 불장난 같은 것은 접으라 말하면서요. 떠나려는 택기에게 무릎도 꿇고, 소년에게 가서 임신 사실을 알리기도 합니다. 조용히 방안에서 슬퍼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지키고자 강순도 자신의 방식으로 시를 쓰는 것입니다. 


 택기는 돌아왔고 아이를 낳았지만, 그녀가 행복할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바라던 대로 남들 하는 것을 하게 됐으니 행복할까요?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강순이 택기를 그만 사랑했으면 했습니다. 본인과 사랑의 능력이 닮은 사람을 만나라고 빌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강순의 불안함을 알아줄 사람. 그리고 안아줄 사람. 강순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곱씹어 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강순은 자신의 삶을 외면하거나 떠나보내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강순은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애틋하고 처절한 사랑을 또 하겠지요. 


 그것이 강순의 시입니다. 시라는 건 다름이 아닙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