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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Jun 07. 2022

한 순간이나마 털어놓는 내 여린 속마음은

1

서울환경영화제 기자회견 취재 중에 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한창 바쁜 와중이라 전화를 끊었더니 문자가 왔다. 급한 일이니 바로 전화를 달란다.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팀장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신인여배우가 죽었다. 영화 그림자 살인에 출연했던 배우란다. 알아봐라.”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했다. 모르는 여배우였다. 이곳저곳 연락을 하면서 그 와중에 영화제 측에서 차려놓은 점심을 꾸역꾸역 먹었다. 죽은 사람 때문에 산 사람의 배고픔을 잊기 싫어서였다.

  

기자회견을 대충 정리하고 여배우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으로 갔다. 가는 도중 날씨는 화창하게 개어 한강의 물결을 푸르렀고 그 위를 비추는 4월의 햇살은 눈이 아릴만큼 화창했다. 택시 안에서라도 기사를 좀 더 검색해야 했지만 그냥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싶어서였다. 조는 와중에 라디오에서 들리는 유행가들의 가락은 날씨와 어울려 흥겨웠다. 그 흥겨움이 어인 일인지 불편했다. 억지로 눈에 힘을 주었다.

  

빈소에 도착해보니 여태까지 취재를 다닌 연예인 빈소 중에 가장 단출했다. 영정 사진과 조화 몇 개가 전부였다. 1985년생 신인여배우는 그렇게 이 세상에서 숨을 쉬지 않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녀의 빈소 옆의 빈소에도 젊은 처자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지나가던 조문객은 혀를 끌끌 찾다. 그 앞에 잠시 앉아 유족들을 봤다. 영정사진을 찍으라는 팀장의 지시가 있었지만 차마 카메라를 꺼내지 못했다. 몇 마디 물어보려 빈소 앞에서 어슬렁 거렸지만 자식이 먼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미 앞에서 정말 우울증으로 자살했냐고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유족들도 내 차림을 보고 기자인줄 눈치 챈 것 같았지만 먼저 물어보지는 않았다.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족들이 취재를 거부하고 있다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유족들에게 직접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병원 로비의 소속사 관계자들이 다른 기자들에게 그리 말했기 때문이다. 팀장도 무리한 취재지시를 하지 않았다. 상황을 보고 전화를 하고 기사를 쓰라는 말 외에는 다른 요구사항이 없었다. 빈소를 나와 장례식장 밖에서 소속사 관계자를 어르고 달래 기사를 위한 몇 마디를 얻어냈다. 기사를 썼고 그러면서도 내 기사의 조횟수를 확인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장례식장 로비에 전원을 꽂을 때 그곳 직원들과 언성을 높였다. 무작정 나가달라는 말에 자제를 못할 정도 화가 솟구쳤다. 평소 같으면 한 수 접고 양해를 구했을 텐데 모처럼 기자랍시고 목소리를 높이며 병원장 나오라는 말까지 했다. 그 직원들도 그저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고 나 역시 내 직무에 충실하기 위해서였지만 내가 흥분을 했다. 자살한 여배우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기사로 써내는 내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 그 직원들에게 투사된 까닭이다. 결국 로비에 앉아 기사를 쓰게 됐고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화를 내고 싸울 듯 날카로웠던 스스로에 대해 진이 빠졌다. 기자 생활의 회의라는 몇 마디의 단어를 되뇌였다.

  

팀장에게 보고를 하고 병원을 나선 시간은 오후 6시 20분 무렵. 집에 들어가 밀린 인터뷰나 쓸까 하려다 가슴이 답답하고 처지가 한심했다. 거리에는 퇴근길의 직장인들이 저마다 약속을 잡는 듯 휴대전화로 하하 호호 하며 걸어갔다. 욕이 나올 정도로 하늘은 맑았고 평온했다. 불과 100미터 후방의 병원 장례식장에는 사람의 죽음 때문에 통곡을 하고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그 간극에서 순간 숨이 막혔다. 삶과 죽음이 이처럼 한데 있고도 개별적이구나 싶었다. 내 주변의 공기에 차단벽이 생겨서였다. 그 차단벽은 보이지 않았고, 볼 수도 없고 단지 감지할 수만 있는 벽이었다. 그 벽에 갇혀 나머지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니 싫었다. 휴대전화를 열고 가까운 지인의 번호를 눌렀다. 그 벽을 허물 수 있는 것은 타인과의 소소한 대화와 가벼운 술 한잔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2

자살로 삶을 마감한 연예인 취재가 얼추 대 여섯 번을 넘는다. 그중 한 명은 유부남이었고 한 명은 자식이 있는 유부녀이자 이혼녀였으며 나머지는 아직 젊음을 꽃 피워보지도 않은 처자들이었다. 그중 젊은 처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특히 더 착잡하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어도 남들에게 선망이 되는 외모를 타고난 그네들은 스스로의 욕망만 포기했더라면 연예인처럼은 못 살아도 어렵게 살지는 않았을 거란 짐작 때문이다.

  

죽은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허나 너무 좋은 나이에 꽃같은 모습에도 스스로 숨을 거둔 이들에 대해 책망하고 싶고 타박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들이 바란 꿈이나 희망이 ‘본질적’인 것들이 아니었을 거란 지레 짐작 때문이다. 또한 사람 사이, 사심없는 관계를 통해 삶의 다양한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었다면 그네들의 삶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연예인들을 취재할 때마다 그네들이 과연 주변의 사람들과 얼마나 사심 없는 소통과 관계를 이어가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의 속성과도 종종 비약적인 논리로 연결 짓는다. 연예인들은 결국 타인의 시선에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 대표적인 직종의 사람들이다. 부와 명예도 실은 타인의 시선을 얼마나 주목시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남이 나를 보는 시선. 남이 나의 외향을 보는 시선에만 초점을 맞추는 순간 연예인들은 자기 안에 갇히게 된다.

 

말이 어렵게 꼬인다. 한마디로 삶의 기준을 내가 정하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연예인.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가 우리들에게 세뇌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타인을 혹은 자신을 평가하는 것. 연예인들을 혹은 그 관계자들을 만날 때 그런 기준에 맞춰 살려는 이들을 종종 본다. 그럴 때는 못 피는 담배를 피고 싶어진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3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라고는 하나 정작 그러하지 못하다. 여리고 어리고 어리숙한 속내를 들키기 싫어서다.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하지 못하고 만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적이 거의 없다. 대뜸 잘 사시냐? 혹은 뭐하냐 퉁명스럽게 묻고 내 할 말만 하고 전화기를 놓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아직까지 내 전화를 받고 약속을 하고 술 한잔 마셔주는 지인들이여. 그대들과의 인연이 이 삶의 언제까지일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언젠가 내가 쓰는 글 속에 당신들의 따스한 흔적이 담겨있을 거라고. 쑥스럽게 적어본다. 이렇게 한 순간이나마 털어놓는 내 여린 속마음은 누군가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주는 작고 작은 용기에 힘 입었다는 것 역시도.


- 십 몇년 전 연예부 기자 시절에 썼던 글. 여전히 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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