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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Apr 27. 2024

집안 정리의 철학

집안 살림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계절에 따른 옷장 정리가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잘 모른다. 철이 바뀔 때마다 옷을 세탁해 옷장에 넣고 또 그 계절에 맞는 옷을 꺼내서 다림질 할 건 다림질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옷을 버려야 할지, 또 사야 할지 고민도 해야 하고 그 고민에 맞춰 해야할 일들이 왕왕 늘어난다.


냉장고 정리도 계절 마다 한 번씩은 해야만 냉장고가 음식쓰레기 저장소가 되는 걸 막을 수 있다. 또 침구류 역시 계절 마다 최소 이불만큼은 바꿔줘야 한다.


주말에 하는 청소도 그저 청소기 한 번 돌리고 걸레질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먼지가 쌓이는 구석을 찾아내 닦아줘야 하고 싱크대 하수구멍에 쌓인 음식찌끄러기를 꺼내야 한다. 화장실 청소 역시 물만 끼얹는다고 되지 않는다. 락스를 이용해 세면대나 욕조 및 타일에 낀 물때를 배껴내려면 팔과 어깨를 꽤나 움직여 줘야야 한다. 


살림을 도와준다고 내심 자랑하는 주변의 유부남들이 있다. 그네들이 말하는 '돕는 일'은 대개 쓰레기 분리수거와 설거지, 그리고 청소기 돌리기 정도이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것 정도도 추가다.


하지만 계절마다 옷장을 정리하고 침구류를 갈고 락스로 화장실 물때를 벗겨내고 냉장고 안의 모든 음식을 들어내 정리하고 소독하고 나아가 베란다 창을 닦고 하는 일도 살림이다. 그 정도의 살림까지 인지하고 나눠해야 그래도 살림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달 초에 첫 아이를 순산한 후배 녀석이 아내와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푸념하기에 녀석에게 "살림을 안해봐서 그래" 라고 핀잔을 주었다. 녀석은 청소와 빨래, 쓰레기 분리수거 정도는 제가 한다며 항변했지만 이내 옷장과 싱크대, 화장실 등등 평소 내가 하고 있는 살림을 나열하자 "아 맞아 그런 일까지는 미처 잘 몰랐어요" 라고 수긍했다.


어머니와 아내 주로 여성들이 감당했던 가사노동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이외로 많다. 자식에게 공부만 하면 된다며 일체 그런 것을 가르치거나 책임을 분담하지 않은 가정도 적지 않다.


페미니즘의 거대 담론 속에서 살짝 아쉬운 부분이 그 지점이다. 남녀 구분 말고 자식에게 살림을 분담시켜야 한다. 여성이 하는 일이라고 응당 굴레가 씌어진 가사부터 그 편견을 깨고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살림은 남녀 모두 같이 하는 일임을 주지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실은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을 위해 해야 할 어쩌면 가장 기초적이고 구체적이고 손 쉬운 실천이 바로 거기에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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