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39
'가족의 중첩'

by 월영

살면서 누군가의 관계를 유지할 때 말로 하거나 글을 쓰는 일은 어느 순간부터 수월하다. 행동만이 끝까지 어렵다, '갈등의 순간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고 구체적으로 움직일 것인가'라는 사고의 흐름대로 결정한 일을 설사 방해가 있더라도 실행으로 옮기는 일이 바로 행동이다.


따지고 보면 말이나 글도 행동을 위한 일종의 수단. 혹은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한 변명의 다른 이름들이다. 특히 연인관계에서 '행동'은 말과 글보다 상위에 있다. 그래서 상투적으로 쓰는 말이 있다. 사랑하다는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말과 글도 행동의 일환이라 할 수 있지만 거짓으로,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결국 연인관계에서 서로가 가장 바라는 것은 구체적이고 진실한 행동이다.


일반적으로 연인관계의 결론은 결혼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도 별다르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 추가하는 게 있다. 각자의 혈연을 공유하거나 대리해야 하는 관계에서 그 관계 탓에 귀찮고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상황을 일상에서 마주하고 견뎌내는 일이다.


달리 말해 '부부'라는 단어 안에 '반려자의 혈연관계와 거기에 얽힌 일련의 사건들로 가중하는 스트레스를 참다가 상대에게 감정적인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 들어가야 맞다. 결혼이 사랑하는 남녀의 결합이 아니라 가족과 가족의 중첩이라고 여기는 문화가 한국은 아직 보편적이다.


상대가 나를 위해, 내가 상대를 위해 귀찮고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당장 모면할 수 있는 말이나 글이 아닌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그 상황을 타개해나갈 때, 결혼은 연애나 동거보다 한층 높은 단계로 올라선다. 그 당위를 서로 인정하고 신뢰하는 게 실은 결혼의 가장 큰 전제 조건이다.


결혼이란 결국 애정에 기반해 생긴 신뢰를 평생 행동으로 증명하겠다는 약속이라 정의하면 너무 고루하고 보수적인 걸까? 그렇다 해도 생각을 바꾸지는 않겠다. 결혼이 그런 약속이 아니라면 굳이 의미를 부여하거나 신중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다. 변하고 달라지는 게 사람이라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또 인간으로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해야 하는 게 아니던가.


삶이 평범하여 충만과 안정과 일치와 혹은 불안과 속박과 갑갑함일지라도 아직 결혼보다 확실한 타인과 관계의 최선은 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머뭇거리며 청춘을 속절없이 보낸 이유는 살아갈수록 깨달음이 커져서다. 아직 해보지 못했음에도 결혼은 말이나 글보다 행동이, 실행과 의지가 본질인 것을. 그러나 나이가 축적될수록 행동에 앞서 점점 생각만 많아지고 수동적으로 변한다. 신중해졌지만 견고해진 경계 안에서 스스로 수감자로 살아간다.


말이나 글로 숨지 않고 당신을 위해 신실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아스라하다.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며 걷고 걷다 보니 어느새 여기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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