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학원을 마치고 들어온 E(12)가 책 한 권을 들고 소파에 앉습니다.
“뭐 좀 먹을래, 씻고 잘 준비하고 책 보는 게 어때?”
이럴 땐 아무리 닦달해도 마이동풍입니다.
잠자리에 드는 모습 보고 자려했으나, 결국 먼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아빠가 지키는 가족’이라는 안정감과 믿음을 위해 ‘아빠가 가장 늦게 잔다!’는 약속은 이날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혼자 한 약속이라 타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사 잊고 단잠을 자고 있던 1시쯤 된 것 같습니다.
“아빠! 아빠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다면 무엇을
그릴 거야?” 아마 책에서 본 내용인가 싶습니다.
궁금한 거 대답 듣기 전엔 물러서지 않는 캐릭터라 편한 잠자리를 위해 잠결에 뇌를 가동해 봅니다.
“글쎄…. 아…. 내 얼굴?”
“오! 신선한데? 그런데 거울 보고 그리면 되잖아?”
“거울 속 내가 진짜 나일까?”
흠칫 대화기 멈췄습니다.
‘거울 속 세상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은 어떻게 하지? 내가 눈을 땠을 때도 거울 속 나는 그대로 있을까?’
그래서 거울이나 그림자를 소재로 하는 공포 영화가 많은 모양입니다.
집에 오자마자 책을 읽는 E의 모습을 바라보면 흐뭇하기도 하지만.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할까 걱정도 됩니다. K-청소년에게 잠에 대해 왈가왈부하기엔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한 노릇입니다.
오늘 저녁엔 E는 보이지 않는 무엇을 그릴지 얘기 나눠봐야겠습니다. “무슨 책을 그리 재미있게 읽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