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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란가 Nov 29. 2023

'빌런'보다 '히어로', 동네아저씨

어릴 적, 울음을 그치지 않는 나에 대한 엄마의 특효약은 "저 아저씨가 '이노오옴~' 한다. 어서 그쳐"였다.

특별한 사인 없이도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온 키스톤 콤비 마냥, 아저씨는 무서운 인상을 쓰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이노옴!"을 했다. 겁이 났고, 억지로 그쳤던 기억이 난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울음을 삼키는 수준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됐다. 내 생각에 '이노옴' 작전은 그다지 좋은 작전은 아닌 것 같다. 아이는 물론이고, 키스톤(엄마와 모르는 아저씨) 모두에게 말이다.


"이노옴~" (이미지 출처: 보배드림)


K(10)와 체육공원에서 배구를 하고 있었다. 재미있어 보였는지, 벤치 한켠에 앉아 우릴 지켜보던 어느 아저씨가 "저희 아들과 같이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왔다. "물론이죠!"


그 아저씨에게는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둘째 아들이 있었는데, 아빠와 형이 공놀이에 집중하니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아빠의 한 마디. "너 자꾸 이러면 저 아저씨가 '이노옴~' 한다." 

'저 아저씨'는 '나'였다.


나는 칭얼거리는 대여섯 살 아이와 일면식도 없다. 어디선가 다시 만날 확률도 매우 낮다. 아이 아빠의 바람대로 '이노옴' 한 마디로 아이에게 겁을 준다면, 모두가 순식간에 평화로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같이 놀고 싶어?'라고 물었다. 아빠의 사인을 무시한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악당일 필요는 없으니까.


아이의 감정을 강제로 숨기게 하지 말자.

아이의 감정은 솔직하다. 말을 할 수 있든 아니든, 표현이 매끄럽든 아니든,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낸다. 딴짓을 하는 아빠를 방해하며 울던 그 아이는 아빠와 형과 같이 놀고 싶었을 뿐이다. 제삼자의 개입으로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고 아이의 감정이 해소 됐을까? 억지로 감정을 숨긴 것에 불과하다. 만약 아이의 아빠가 '이노옴'을 했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낼 것이다. 아빠니까.

그러나 낯선 아저씨가 무서운 얼굴과 저승사자의 목소리로 내뱉는 '이노옴'은 공포일뿐이다. 공포는 극복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피하고 숨고 싶은 마음만 들게 할 뿐이다.


히어로가 될 수 있는 동네 아저씨를 '빌런'으로 만들지 말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내가 어릴 적 아파트가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절과는 다르지만, 알게 모르게 동네 공동체는 그 아이를 돌보고 있다.


"5층 사는 아들, 못 본 사이에 키가 엄청 컸네."

"11층에 새로 이사 온 집에 남매가 사는데, 오빠는 중학생인가 봐."

"E(딸)의 친구인 'X'가 이 늦은 시간에 편의점에 혼자 있더라고."


동네 아저씨는 오며 가며 봤을 법한, 서로 얼굴을 익힌 사이로 아이를 지켜주는 좋은 CCTV인 셈이다.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 '이노옴 아저씨'는 불편한 빌런이다. 불편한 빌런보다는, 믿을 수 있는 히어로가 가까이 있는 게 아이와 아저씨 모두에게 더 아름답지 않겠는가. 한 아이를 온 마을이 키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앞집 할머니께 '이노옴'을 부탁하는 대신, 아이가 먼저 인사하게끔 가르치는 아빠가 되고 싶다.


느닷없이 K는 검은돌을, E는 흰돌을 각각 가지고 놀고 있었다. 문장을 완성하고 싶던 K는 누나인 E의 흰돌을 뺐어왔다. 아빠를 감동시키는 메시지를 선물했다. 그리곤 둘이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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