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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굽기 Oct 12. 2019

수업도 듣기 싫은데 썰이나 풀어봐

재미있는 이야기가 대체 뭘까 궁금한 이야기

단연코 공부를 즐겼던 적은 삶 내내 한 번도 없었지만, 그런 매일 중에서도 유독 더 하기 싫은 날들이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역시 다르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 그런 날이 나보다 많을 거라고 추측을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아무튼 그런 날이면 학생들은 시간을 끌어보겠다고 최대한 느적거리다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음에 절망하는 몸부림을 몇 번 치고서,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말한다. 재밌는 얘기 해주세요. 그럼 나는 살짝 당황해서 일단 그런 거 못 한다는 투의 말을 아무거나 휙 던지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역시 생각나는 건 없다. 늘 그런 식으로 학생들의 시간끌기는 수포로 돌아가고 나는 수업을 시작한다.     


퇴근한 뒤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생각해 보아도 주머니 속에 학생들에게 해줄 만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았다. 애당초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에게 먹힐 만한 사람이긴 한가. 평소에 영화 얘기 노래 얘기 책 얘기 사진 얘기 이런 거나 떠들 줄 알았지 속에다가 어린 친구들이 흥미진진하게 들을 만한 걸 들고 다니진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중고등학생도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있겠지만 선생님 재미있는 얘기 해주세요에다가 책 같은 걸 끼얹을 순 없는 일이다. 내가 살면서 무슨 뒤죽박죽의 연애사(코 박고 죽을 뭔가는 있었다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한 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와 너무 재미없게 살았던 벌을 이런 식으로 받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그러다가 ‘할 이야기가 없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군대에 있을 적에 친구가 내 편지를 읽고 한 말이 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할 말이 많을 수가 있냐고 그랬던가, 아무튼 내가 진짜 말이 많다는 소리였다. 그러게, 사람이 어떻게 편지를 오천 자를 넘게 쓰지. 나도 쓰고 나서 놀랐다. 아무튼 그제나 저제나 나는 주절댄다.      


말주변이 없어 그렇지 말은 늘 많아서 언제나 온갖 잡담거리를 휘적이고 다니기 일쑤였다.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오래 산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평생 동안 글을 썼고 아마 남은 평생도 어떤 방식으로든 이 짓거리를 계속 할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는 이천 자에 가까운, 혹은 그걸 넘기는 분량의 글을 거의 매일같이 업로드한다. (아직 안 봤는데 혹시 궁금하다면 보고 가도 좋겠다 사진도 많고 글도 많다) 지금이야 수필만 쓰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설을 쓰겠다고 깝친 전력마저 있다. 다시 말해서 할 이야기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는 수다스러운 사람이고 할 이야기가 언제나 많은 사람이다. 이야기 하는 건 언제나 좋다. 특히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더더욱 좋다.     


그럼에도 학생들 앞에서는 유독 입이 잘 안 떨어졌다. 재미있는 이야기 해주세요에 대체 무슨 답변을 하면 좋을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러다가 사실 저 학생들도 딱히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걸 물어본다기 보다는 그 말을 들은 내가 당황해서 수업을 더 늦게 시작할 것이라는 걸 알고 그걸 물어보는 건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닿는데 그런 건 조금 슬퍼지니까 아니기를 희망해 본다.      


그래서 한 번은 그렇게 물어봤다. 여러분은 (수업을 할 때는 항상 존댓말을 쓴다) 대체 어떤 이야기를 기대를 하고서 저한테 재밌는 얘기를 해달라고 하는 건가요. 그랬더니 대번에 나오는 얘기가 ‘여자친구 얘기요’ 다. 그러면 나는 한숨을 쓱 쉬며 ‘없다니까 그러네.’ 한다. 그러면 그 중 한 명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그럼 전여친 얘기 해주세요.’ 한다. 그럼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아니 제가 당신들이랑 왜 제 전 애인 얘기를 해요.’ 한다. 그러고서 한 마디 덧붙인다. ‘청소년 정서 발달에 좋은 얘기는 아니니까 나중에 스무 살 넘어서 들으러 와요.’ 하고. 그러면 비웃음인지 뭔지 모를 웃음이 학생들 사이에 퍼진다. 그러고 만다. 싱겁다.     

 

저 학생들이 스무 살을 넘기면 나는 서른 살 근처가 되어 있겠지. 그 때까지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개발해 내야 한다. 이야기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살아가지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다. 학생들이 던져준 화두가 아주 뜨겁다. 조금만 더 고민하다가 그 친구들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대체 누구인지도 모를 전 여자친구 얘기를 대체할 만한 걸 데려올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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