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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굽기 Feb 16. 2020

고려대생이 집구석에서 커피 타마시는 브이로그

대학교라는 타이틀을 사회가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궁금증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패드를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유튜브 영상들을 몇 개 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추천 영상 목록에 아이패드 활용에 관한 영상들이 주루룩 뜬다. 아이패드의 활용성보단(태블릿이란 기계의 활용성에 대해 항상 회의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아이패드에 들어간 하드웨어 같은 데 관심을 가지는 편인 나였기에 이렇게 재편된 추천 영상 목록은 나에게 꽤 생경한데(일단 매번 칙칙한 기계 일색이던 피드가 뭔가 다꾸! 스티커! 하면서 맬런뽀착해진 게 크다) 뭐 분위기의 변화야 그럴 수 있다 치고 가장 미묘한 기분을 주는 건 사실 ‘~~대생의 아이패드 공부 활용법’등의 등장이다. 연관 영상 체인 같은 건지 ‘~~대생의 일상 VLOG’ 같은 것도 뜬다. 사실 무슨 대학 다니는 누가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는 딱히 관심이 없고 그 사람들이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지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는지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어쩌다 댓글을 봤는데 대학교 얘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음, 역시 기묘하다.


사실 공부에 관해서 공부를 잘 한다는 사람의 기록을 들춰보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디자이너의 평소 작업 루틴이나 운동선수의 웜업 코스를 바라보며 배울 점을 찾는 건 어쩌면 꽤 효과적일 수 있는 학습법일 거고, 이거나 저거나 내내 똑같지 뭐. 그럼에도 다소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건, 무슨무슨 대학교 학생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시선이 디자이너나 운동선수, 혹은 여타 이름들에 대한 선망과는 조금 결이 다른 것처럼 보여서다.


디자이너의 아이패드 드로잉 영상에 호응이 생기는 것은 그가 디자이너여서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업로드한 영상에서 드러난 그의 드로잉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의 웜업 영상도 기본적으로 그의 영상에서 드러난 운동 관련 지식이 뛰어나고, 그의 루틴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호응을 받는다. 다시 말해, 그들에 대한 호응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전문가적 면모에 기반하고 있다. 어떠한 직업을 갖춘 직업인은 그 직업 자체만이 아니라 그 직업에서 파생되는 능력에서 아우라를 얻는다. 나태하거나, (대중이 생각하는)프로 수준의 작업을 해내지 못하는 직업인은 그 아우라를 모두 잃고,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가 데뷔 당시에 어느 정도의 기량을 가졌든, 이후의 커리어에서 적절한 결과물을 내지 못한다면, 혹은 적절한 태도를 가지지 못한다면 그는 더 이상 대접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명문대생은 어떨까. 명문대생은 그냥 명문대생이라서 아우라를 가진다. 학교 수업을 다 제끼고 피시방을 다니며 C D F를 맞아도 명문대생이라 멋있고 오히려 캠퍼스의 낭만 같은 걸로 포장된다. ‘막 사는 척 하지만 사실은 명문대생’이라는 이상화가 따라붙기도 한다. 사실 막 사는 척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막 사는 건데. 수능이야 잘 봤을 수 있겠지만. 어, 근데 명문대생의 능력은 공부 아니었나요. 그럼에도 명문대생은 그냥 멋있다. 명문대생들이 전부 학점 표를 까는 것도 아닐 거고. 그럼에도 그들의 전공 성적과 관계없이 고려대생이면 주변 사람들 다 고려대생이겠네요 ㄷㄷㄷ 하는 댓글들이 달린다. 결국 명문대생은 디자이너와 다르다.


상기한 지점을 직업인이 본인 직업 외의 무언가를 능숙하게 해낼 때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도 이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일 운동선수가 노래를 끝내주게 잘 한다면, 그가 ‘노래까지 잘 하다니 대단하다’는 평을 듣는 것은 그가 프로로서의 운동 선수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노래에 대한 재능까지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여러 능력의 겸비가 고평가의 포인트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래를 잘하는 연대생은 연대생인데 노래까지 잘하는 연대생이 된다. 다시 말해, 명문대생은 일종의 신분으로 작용한다.


기묘함은 여기서 발생한다. 명문대생은 사실 그냥 이십대라는 것. 모두, 아직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 수능을 잘 본 이십대의 컨텐츠가 ~~대생의 스타벅스 브이로그 등으로 소비되고 선망된다는 것, 혹은 인터넷 공간에서 강한 발화 권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괴상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명문대생이라는 타이틀이 소비되는 방식은 뭔가, 과장 좀 보태서 영국 왕실의 하위하위하위호환쯤 되는 느낌이다. 어디서였지, 영국 사람들이 영국 왕실을 바라볼 때는, 마치 어떤 드라마를 보고 있는 느낌의 시선을 가진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명문대생도 얼추 비슷하다. 명문대라는 하나의 장르로 묶인 사람들이 된 듯하다.


2014년에 공부를 좀 열심히 해서 어쩌다 고려대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됐고, 학점과 인생 계획을 착실히 망쳐 가고 있으나 뭔가 나의 생활감과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이른바 명문대생의 느낌이 많이 달라서. 더군다나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등의 역시 고대생 하는 댓글이나 고려대생 브이로그의 고려대 뭐시기 댓글하고도 많이 달라서. 뭔가 뭐시기한 느낌. 우리 사회에서 명문대생이라는 타이틀은 대체 얼마나 기괴하게 비뚤어져 있는지.


다행인 점은 나는 잘생기지도 않았고 딱히 낭만적이지도 않아서 내가 고려대생의 열공 브이로그를 올려도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커피 마시는 영상이 궁금한 사람은 2020년 기준 마이너스 지점을 돌파했을 것임이 자명하며 사실 공부도 안 해서 애초에 열공 브이로그 못 올릴 것 같다. 그래서 아이패드를 어떻게 쓸 것인가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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