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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Sep 14. 2024

바쁘다 바빠

퇴근하는 엘리베이터 안, 다른 층의 그 어떤 회사의 직원인 것 같은 그녀들의 대화입니다.


목이 푹 꺼져 어깨까지 늘어져버린 상태로 “오늘 엄청 정신없고 바빴는데 퇴근하려고 보니 오늘 뭘 한 건지 모르겠네, 생각해 보니 한 개 별로 없어~, 바쁘기만 했었어~”

모르긴 몰라도 엘리베이터에 같이 있던 다른 그들도 그 푸념에 격하게 공감했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직원들도 바쁘기만 하고 한 것 없이 하루를 보내는 거 아닌가 싶었죠. 이런 것이 입장차이 인가 봅니다.


오늘은, 아니 지금의 나는 살아온 모든 시간의 결과이다. 

미래에 가치를 둔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현재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 나가는지가 미래의 내 모습을 결정한다. 


회사도 사람과 같습니다.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어떤 결정과 행동들로 채워졌는지가 현재 회사의 상태 이겠고. 현재를 어떤 결정과 행동들로 채워나가는지가 미래의 상태를 결정할 겁니다.


그래서 시간에는 의도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의도함이 오늘의 선택과 결정, 행동의 이유여야겠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바쁩니다.

한 시간이, 하루가, 한주일, 한 달, 일 년이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지나갈까요?

아마도 바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나간 시간 뒤에 서서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 여성분의 푸념처럼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바쁘기만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의도함이 없었고, 의도함이 있었어도 노력함이 없었고, 그래서 이룬 것 없이, 변한 것 없이 지나간 한 시간이 아쉽고, 하루가 아쉽고, 한 주일이, 한 달이, 한 해가 아쉬운 거겠죠.


그래서일까요? 어느 순간부턴 해가 지나도 나이세는 것을 안 하게 되더군요.

나이에 비례해 아쉬움이 커지다 보니 덜 아쉬울려고 하는 방어기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렸을 때는 바쁘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 같고 잘 사는 것 같았습니다.

야근을 하고, 밤새워 많은 양의 급박한 업무들을 처리하고 나면 몸은 피곤해도 왠지 뿌듯하고, 잘 살고 있는 것 같고, 그런 느낌들로 피곤함에 비례해 잘 살고 있다는 만족감이 컸었죠.


그렇게 바쁨에 중독되고 바쁨에 속아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이유는 간단하더군요.

바쁘면 생각을 안 합니다. 당장 급한 일, 눈앞의 문제만 보게 되고 그래서 미래의 문제는 볼 수 없고 그렇게 선재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미래는 문제는 다시 현재가 되어 나타나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쁘고…

그렇게 매일 새롭게 마주하는 현재의 문제에 대처하느라 미래에 대한 바람도 없고 의도함도 없고, 있더라도 현재의 문제에 모든 시간과 노력을 소진해 미래의 바람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이제는 멈춰 서야 할 것 같습니다.

자전거에 페달 밟는 것을 멈추면 속도가 느려지고 느려지면 넘어질 것 같은 생각에 계속 페달을 밟아 왔는데요, 속도가 느려져 중심을 잃어 넘어지더라도 아직은 내디뎌 지탱할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을 때, 아니 두 다리가 지탱해 줄 수 있을 때 잠시라도 멈춰 서서 내가 지금 맞는 곳으로 가고 있나,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를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잠언 26장 14절)


성경에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역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 말씀도 그런 역설 중 하나입니다.

뱅글뱅글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는데 게으르다고 말합니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이 문짝은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정말 게으른 침상에서 뒹구는 사람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오늘 바쁨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니 이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의미 없는 바쁨, 같은 일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며 살아가는 목적도, 의도함도, 발전하려는 시도도 없는 상태는 마치 침상에 누워 뒹굴뒹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촌철살인이었던 것이죠.


현대인은 멈추면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뒤쳐지고 도태되고 낙오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바쁨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 게으름과 다르지 않다고 경고하는 잠언의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무엇을 위해 바쁜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어떤 결과를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멈춰 서서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더 잘할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하게 되고, 혹시 목적하는 것과 다른 길로 가는 것은 아닌가 살펴보게 되고,

심지어는 그 목적 자체가 맞는 것인가 까지 생각할 수 있는 그래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나무꾼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열심히 일하려고. 쉬지 않고, 밥도 안 먹고 쉴 새 없이 도끼를 휘둘렀던 나무꾼과

밥도 먹고, 쉬기도 하고, 잠깐잠깐 도끼날도 갈고 했던 나무꾼.

저녁이 되어 나무를 지고 산을 내려갈 때 누가 더 많은 나무를 해갔는지…


잠깐 쉬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잠깐 멈춰서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뒤처지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설득해 봅니다.

바쁨에도 의미가 없으면 게으름인 것처럼, 멈춰 쉬는 것에 의미가 없으면 더더욱 부정할 수 없는 게으름일 터, 좋은 멈춤을 위한 훈련을 이렇게 시작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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