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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Apr 17. 2024

라포레하라주쿠,모리빌딩이 하라주쿠를 택한 이유.

공간의 경험은 지역색을 담아내야한다

모리빌딩이 하라주쿠를 택한 이유.'

모리빌딩이 라포레 하라주쿠를 만든 이유는 하라주쿠에서 새로운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모리빌딩은 그 당시 하라주쿠 센트럴 아파트에서 멘션메이커와 젊은이들이 모이고, 피테칸트롭스같은 클럽에서 춤추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하라주쿠안에 문화가 싹트기 시작하는 걸 발견했다. 그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하라주쿠에 새로운 문화가 싹트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라주쿠는 단순한 상업 지구를 넘어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모리빌딩을 사로잡았다. 이에 모리빌딩은 라포레 하라주쿠를 통해 하라주쿠에 새로운 '거리'를 만들고자 했다. 단순한 상업 시설이 아닌, 젊은이들의 문화와 트렌드가 꽃피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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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빌딩은 ‘변화는 계속한다’라는 관점을 가지고 라포레하라주쿠를 바라보았고, 이런 방향에 근거한 모리빌딩은 라포레하라주쿠룰 지은 후에도, 젊고 재능 있는 브랜드를 최대한 지원했다. 어떤 것이든지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모리빌딩에게는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모리빌딩이 45년간 라포레 하라주쿠 시대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모리빌딩이 라포레 하라주쿠를 하나의 ‘상자 정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라포레하라주쿠를 하나의 ‘상자’로 생각했으며, 

 그들은 라포레 하라주쿠를 하나의 '상자'로 인식했다. 그 안에 가꾸어지는 '정원'은 바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상자'인 라포레 하라주쿠 건물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그 안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마치 정원 속 식물과 꽃들이 계절을 따라 모습을 달리하듯, 모리빌딩은 라포레 하라주쿠 역시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변화에 따라 늘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리빌딩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라포레 하라주쿠를 '언제나 변해야 하는 공간'으로 정의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변화하지 않는다면 공간은 생명력을 잃고 말 것이라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상자 정원 철학은 라포레 하라주쿠가 45년간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진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건물 자체가 아닌 그 안에 모인 사람들의 트렌드와 문화에 주목함으로써 시대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모리빌딩은 이러한 통찰력으로 라포레 하라주쿠를 하라주쿠 문화의 중심지이자 트렌드를 이끄는 명소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모리빌딩은 언제나 그 상자 안에서는 시대정신에 맞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 작은 멘션메이커들이 1980년데에  DC브랜드로 이어지는 시기에도, 모리는 그 변화에 맞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늘 이렇게 생각했다. ‘라포레하라주쿠라는 건물은 모리의 것이다. 하지만 그 안을 채우는 하라주쿠는 모리도 그 누구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모리빌딩은 라포레하라주쿠를 명확하게 나누려고 하지 않았다. 남성복이나 여성복 같은 분류가 아닌, 문화와 브랜드들이 혼재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다. '불완전한 재미, 브랜드 간 충돌'이 라포레 하라주쿠 안에서 문화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안하리라고 기대했다. 모리빌딩 라포레 하라주쿠 안에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충돌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문화의 씨앗이 소중히 자라고 발전할 것이라 믿었다.


마음을 끌어들이는 라포레하라주쿠의 광고들.

라포레 하라주쿠는 초기부터 창의적인 광고로 유명했다. 오누키 타쿠야, 노다 아츠시와 같은 수많은 아트 디렉터들이 라포레 하라주쿠의 광고를 맡았다. 지금은 SNS로 인해 광고와 콘텐츠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이지만, 라포레 하라주쿠가 하라주쿠에서 자리 잡아가던 시기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그 시기에는 광고, 특히 광고를 만드는 아트 디렉터의 역량이 브랜드와 상업시설의 이미지를 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라포레 하라주쿠는 해외의 유명 아티스트를 통해 광고를 시작했다. 그중에서 최초로 광고를 맡은 사람은 보그, 하퍼스 바자르, 엘르와 같은 유명 패션 잡지에 일러스트를 그린 안토니오 로페즈였다. 로페즈의 팝아트와 초현실적인 비주얼은 라포레 하라주쿠의 초기 이미지와 완벽하게 어울렸다. 그러나 라포레 하라주쿠는 그의 광고를 고정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 당시의 패션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라포레 하라주쿠는 항상 새로운 광고를 선보이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라포레 하라주쿠는 이를 위해 10년 동안 다양한 아트 디렉터들과 협업하여 광고를 제작했다.

라포헤하라주쿠의 광고는 일본광고들의 역사라고 할  정도다. 출처: 라포레 하라주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화려한 광고로 관심을 끌던 라포레 하라주쿠의 광고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 중심에 선 이는오누키 타쿠야였다. '광고를 거부하는 광고'로 불리는 과격했던 그의 광고 캠페인은 라포레 하라주쿠의 인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그 후 14년 동안에 걸쳐 오누키 타쿠야를 비롯하여 노다 나기, 아오키 카츠노리, 나가오카 켄메이까지 수많은 아트 디렉터들이 라포레 하라주쿠의 광고를 다채롭게 선보였다.

라포레 하라주쿠는 여전히 젊은 크리에이터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라포레하라주쿠는  1982년에 건물 안에 다목적 홀과 라포레 박물관 하라주쿠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현대 아트와 퍼포먼스를 비롯한 다양한 기획을 선보였으면서, 하라주쿠 문화의 중심지로 주목받았다. 

2003년에는 시이나 링고의 데뷔 5주년을 기념한 '림 박람회'를 개최하며 주목을 받았고, 2011년에는 체코의 거장 얀 슈반크마예르의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2008년부터는 파리에서 열리는 '재팬 엑스포'와 같은 일본의 서브컬처 박람회에 참가하여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2019년에는 일본 최고의 아트 디렉터 중 하나로 꼽히는 요시다 유니의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라포레 하라주쿠는 단순히 전시회와 이벤트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광기 마켓'과 'minacute'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의 협업으로 다양한 공간들도 만들고 있다. 이를 통해. 모리빌딩은 라포레 하라주쿠를 차세대 크리에이터들이 활약할 수 있는 장소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라포레 하라주쿠는 하라주쿠 거리의 사람들과 함께 모이는 새로운 공간을 계속해서 창출해내고 있으며, 하라주쿠는 여전히 도쿄를 대표하는 트렌디한 지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부야는 파르코가 있었다면? 하라주쿠에는 모리빌딩에ㅡㄴ 라포레 하라주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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