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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이 Jun 04. 2023

읽고 쓰는 것에 대하여(1)

글방과 책읽기로 점철된 2달의 이야기 모음집

에너지가 고갈될 때, 그리고 에너지가 다시 차오를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읽는 일이다. 쓰는 일은 에너지의 고갈 여부와 관계없이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기에 쓰는 일은 항상 하는 일이다.

읽는 일을 하며 에너지가 조금 차올랐다고 생각하면 글을 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쓰는 일이니까. 그리고 가끔은 생각을 말이나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흉물스럽게 터져버려서 없었던 일이 되고, 어느 날 그때의 생각을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봐도 더이상 형체 없는 생각은 잡히지 않아 마음만 답답하다.


업무에서, 그리고 개인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읽고 쓰는 것'에 대해서 언젠가 글로 쓰고 싶었다.

언젠가 쓰고 싶은 그 글은 내 머릿속의 안개 낀 형체로만 그저 완벽하게 있을 뿐, 무엇을 써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써야할지까지는 구체적이지 않았다. 구체적이었다면 아마도 이보다는 좀 더 나은 글을 썼을 텐데.

항상 쓰고 싶은 것들을 서랍에만 숨겨놓기보다는, 그래도 언젠가 내가 편하게 뒤적거려 읽고 싶은 마음에 내가 가장 쓰고 싶었던 주제로 조금씩 글을 써보기로 했다. 언젠가 연작으로, 좀 더 나은 글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그나마 내가 가진 것 중에 쓸만한 것

그나마 내가 가진 기술 중에 돈이 될 만한 것은 글을 쓰는 일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그리고 아직 내가 그나마 흥미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 글 쓰는 일이기에 그나마 쓸만한 기술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남들의 평가가 박하지 않은 나의 재능 중 하나가 글 쓰는 일이기에 그나마 쓸만한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남들의 평가가 나쁘지 않은 기술을 가진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돈을 버는 일에도 쓸모가 있고, 돈을 못버는 일에도 나에게 쓸모가 있는 글쓰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키보드에 열 손가락을 올린다고 해서 커서가 오른쪽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글을 쓰는 일은 항상 깜빡이는 커서와 질끈 감는 내 눈과 뭐라도 두드려 보려는 여덟 개의 손가락의 대환장 파티이며, 내 머리에는 정말 이게 최선인지, 아니면 이 글을 써도 되는지 완성되지도 않은 글을 비판하고, 검열하는 데 집중한다.

커서가 오른쪽으로 흘러가다가도 왼쪽으로 수십 번 다시 밀려오는, 밸런스가 깨진 밀물과 썰물 같은 고초를 겪어야 그나마 읽을만한 글 하나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봤자 단편소설 분량의 절반이나 될까 하는 짧은 글이지만, 전업 작가가 아니니 그리고 평소에 쓰는 업무용 글은 짧은 글이니 그래도 노력했다고 생각하고 내 쓸만한 기술이 나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다독인다.


어릴 때 내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글 읽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기억난다. 새 책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얻어온 책들이 집에 있었고, 그것이 조금 서러웠는지 지금은 책장이 터져나갈 정도로 책을 모으고 있으니 읽는 것을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중학교 때 국어시험 주관식 문제 중에는 제공되는 책(단행본) 중 하나를 다 읽어야만 풀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당연히 책에서 출제되는 문제들은 전부 맞았던 기억이 난다. 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당시에도 지금도 내 주변에는 책 읽는 걸 성격에 맞지 않아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읽는 것을 즐기는 것 또한 내가 가진 것 중에 쓸만한 기술임에는 틀림없다.



한 번 쓰더라도 최소 두 번은 읽어야 할 수 있는 일

언젠가는 서평을 써보고 싶었다. 사실 어릴 적에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의 현실을 알아야만 창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나서는 그나마 또 내가 할 수 있는 번역가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내가 쓸 수 있는 외국어는 너무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언어였기에 뛰어난 한국어를 구사하지 않는 이상, 또는 뛰어난 감각으로 외서 번역을 기획하지 않는 이상, 이 또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는 서평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종국에도 하고 싶은 일은 쓰는 일이었다.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하니 이 둘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서평이라고 생각했고, 한국은 아직 외국만큼 서평가가 많지 않으니 뭐라도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들과는 너무나 다른 감정선을 가지고 있고, '맞는 말은 맞는 말', '좋은 글은 좋은 글 이외에 쓸 말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감각한 내가 서평을 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마글방'을 만나게 되었다. 만나게 된 당장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신청하지 못했지만, 그다음에는 시간을 억지로 맞추어 시작하게 되었다.

어릴 때도 그렇고, 그보다 더 자란 지금도 그렇고 글방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또는 누군가의 글을 읽고 건강하게 감상과 평가를 해본 적이 없다. 주로 논술 선생님에게 글을 보여준다거나, 불특정다수에게 읽히기 전 내부에서 검수하는 정도가 나의 글을 남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피드백에는 건강한 것과 건강하지 않은 것이 섞여 있었는데, 대부분이 건강하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글방의 처음은 너무나 어색했다. 항상 막내 포지션이었던 내가 그렇지 않은 공간에 들어왔을 때의 어색함이 컸다. 그리고 글방 규칙을 들었어도, 규칙으로 명시되지 않은 암묵적인 규칙을 몰랐기 때문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내가 있었다. 간만에 느끼는 '어찌할 바 모르겠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어찌 할 바 모르겠는 나는 그저 글을 꾸준하게 쓰고, 글을 꾸준하게 읽고, 다시 감상을 꾸준하게 정리했다.


하마글방 40기에 참여하면서 남긴 기록들. 합평들에는 글방 친구들 개별의 나의 감상문이 쓰여 있다.


내 글을 쓰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합평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와 좋은데' 말고는 더이상의 감상도, 글의 형식에 대한 평가도, 궁금증도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동안 나의 최고의 감상문은 언제나 '와 좋은데', '추천합니다', '북마크(플래그잇)이 모자를 지경' 정도였다.

내가 쓴 글은 쓰면서도 교정을 하지만, 다 쓰고 난 후 딱 한 번 읽고 교정 후 마감을 했다. 하지만 글방 친구들이 쓴 글은 그럴 수 없었다. 마감 시간 이후에 글을 한 번 읽고, 다음날에 한 번 더 읽고 그제야 감상을 썼다. 글방의 다른 친구들은 어땠는지는 몰라도, 어디에 글을 적지 않고서는 나는 '좋았다' 말고 다른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감상을 2, 3꼭지 미리 작성했다. 그리고서는 글방이 열릴 때 다른 친구들의 글을 한 번 더 읽었다.

질문은 항상 '이 캐릭터에 대해 더 알고 싶다' 말고는 없고, 감상의 절반이 내 개인적인 이야기에 머물렀지만 그래도 다른 이의 글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새로운 관점을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즐거운 글방 생활이었다. 그리고 안전한 공간에서 서로의 글과 생각과 감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글 칭찬을 해주는 글방 친구들 덕에 힘을 내서 글방에 참여하는 기간을 버틸 수 있었고, '어떤 치유'라는 힘든 글을 쓸 마음도 생겼고, 옛저녁에 접어두었던 소설과 작가에 대한 마음도 조금은 피어오르기도 했다. 참 좋은 글방 생활이었고, 다음 글방이 기대된다.



읽고, 읽고, 또 읽고. 그렇게 쌓인 17권

지난 5월은 아마 내 인생에서 단기간에 책을 가장 많이 읽은 달로 기억될 것이다. 휴가도 아니고―물론 연휴가 3번이나 끼어 있었지만출근과, 업무와 퇴근을 하면서, 그리고 글방을 하면서도 책을 주구장창 읽었다.

5월에만 책을 17권 읽었다. 에세이, 소설, 인문사회, 만화 구분 없이 읽었고 철학과 여성주의는 조금 부족했다. 5월에 부족했던 부분은 이번 달 읽을 책들에 조금 반영해 두었다. 분야별로 조금씩 읽는게 환기가 되어서 끊임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지난달에는 책을 좀 많이 읽고 싶어서 읽고 싶은 책들을 미리 찾아서 바깥으로 꺼내놓았고 자리를 오가며 읽다 보니 꺼내놓은 책 중 80%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그냥 읽는 걸 좋아해서, 마침 연휴가 많이 끼어있는 날들이 많았고 최근 매주 글을 쓰다 보니 헛헛한 마음이 들어서 채우려고 읽었던 것 같다.


5월 한 달간 읽은 책들. 과거에 읽다가 멈춘 책들도 몇 권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여학교의 별 3권> 추가하는 것을 잊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로 게임 방송을 보거나, 책을 사거나 책을 읽는 일이다. 책을 읽을 때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사실을 알기도 전부터, 뭔가 본능적으로 책을 찾았던 것 같기도 하다. 4가지 일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여전히 책을 '사는' 일이다. 책을 고르고, 결제할 때 가장 신난다. 다음 달 카드값따위는 미래의 내가 갚을 일이니, 현재의 내 알 바 아니다.


최근에는 'Annotating Book'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어로 말하면 책에 주석 달기 또는 북마크(플래그잇) 활용해서 책 읽기 정도 되겠다. 북마크 색깔별로 범례를 만들고, 책 본문에 헷갈리는 단어의 뜻을 기록하거나, 생각들을 빼곡하게 기록하면서 읽는 방식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빌린 책은 읽지 못하고, 특히나 줄이 그어져있거나 누군가의 기록으로 남은 책을 읽지 못한다. 중요한 부분을 스포일러 당한 것 같기도하고, 나는 공감되지 않는 '밑줄 친 부분'이 왠지 밑줄 친 그 누군가의 주장으로 들려 공감해야할 것만 같은 이상한 끌림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의 책 대부분은 두어 번 읽었어도 북마크 말고는 별도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 책 표지도 깨끗하고, 내지를 접거나 밑줄을 치지도 않는다. 가끔 책갈피가 없어 책날개가 조금 구겨진 것 말고는 중고 서점에 판다면 '최상' 판정받을 정도이다. 평소에 밑줄을 치지 않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항상 점착 북마크(플래그잇)을 사용해서 표시한다. 그것도 구겨지는 게 싫어서 아슬아슬하게, 책배에서 1~2mm 튀어나오게만 붙인다.


'Annotating Book'을 알게 된 후에는 조금 도움이 되는 독서방식이라고 생각해서, 북마크 색깔별로 범례를 만들어 두었다. ▲기억할 만한 문장 ▲반대의견이 있는 부분, 옳지 않은 문장(빻은 문장) ▲충격적인 부분 ▲새로운 사실, 사실 정보가 나열된 부분 ▲공감되는 문장 ▲질문과 사유가 생기는 부분, 총 6개로 구성해 두었다.

이것에 맞추어 북마크 색깔을 지정하고 북마크를 붙이다 보니, '기억할 만한 문장'을 가장 많이 쓰고, 그다음은 '사실 정보가 나열된 부분'을 가장 많이 썼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북마크 한 부분만 따로 독서노트에 올겨 적는데, 이때 책배를 보면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색깔로 알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웠다. 기억할 만한 문장이 많은 책, 반대의견과 함께 충격적인 부분, 새로운 정보가 골고루 붙어있는 책을 보면서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기억을 준 책인지 훨씬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읽는 재미가 한 층 쌓였다.



글로 쓰기에는 조금 애매해서

글을 쓰는 것에서 조금 확장해서, 팟캐스트도 하나 진행하고 있다(대본을 쓰고, 읽으니 이 또한 쓰고 읽는 것에 포함되지 않을까? 최종사용자는 들을 수밖에 없겠지만). 글로 쓰기에는 조금 애매해서.

글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독자의 어휘와, 감각과 환경, 그리고 그날의 감정에 따라 아무래도 아주 가끔 오해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해만큼 글이 더 긍정적이고, 더 넓은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기에 원치 않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약간 글로 쓰기 애매한 그 무언가, '거시기'라는 억양과 말로 퉁쳐질 수 있는 무언가를 쓰고 싶어서 팟캐스트를 다시 시작했다.


한창 나의 SNS 타임라인에 김훈 작가의 '그 글'이 핫해 글로 쓰기는 애매한 것들을 말로 풀어보았다.


글방에서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 을 하마글방에서 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글을 글방에서 낭독할 기회가 있었다. 낭독이 독자들에게 더 많은 감정과 글쓴이의 의도를 확장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난생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낭독에 대한 좋은 기억이 하나 생겨서 팟캐스트에서도 내가 쓴 짧은 글들을 낭독해 볼까, 그런 생각으로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글로 쓰기에는 조금 애매했기 때문에. 


이번주도 이렇게 글 한 편과 대본 한 편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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