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해피 Feb 21. 2022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행동은 선택할 수 있다

할머니와 자전거 바퀴 바람을 넣고 돌아오던 길



주말 낮에 할머니께서 고등어와 간식을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할머니 댁에 도착했고 강아지랑 조금 놀다가 오후 4시경에 눈이 많이 온다고 하여 문 밖을 나섰다. 할머니는 항상 나나 우리 가족이 할머니 댁을 나설 때 배웅을 해주시는데 그때 내 자전거 바퀴에 바람 빠진 것을 발견하셨다. 그리고 할머니가 옷을 입고 내려올 테니 근처 아는 자전거 가게에 같이 가서 바람을 넣자고 하셨다.



할머니께 어떻게 그렇게 자전거 바퀴만 봐도 바람 빠진 걸 아셨느냐고 물으니 할아버지 자전거 가게 가셨을 때 알게 모르게 눈으로 배웠다고 하셨다. 그냥 혼자 가도 된다고 하니 자전거를 구매하지 않고 바람만 넣는다고 하면 자전거 사장님이 싫어할 수도 있고 뭐라고 할 수 있으니 할머니가 아는 자전거 가게에 가자고 하셨다.



바람 빠진 자전거를 끌고 할머니와 길을 걸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와 시장도 보고 내가 좋아하는 약국에 가서 대일밴드와 박카스를 사고 돌아오곤 했다. 아픈 곳도 없는데 대일밴드를 붙이고 박카스를 맛있다고 음료수처럼 마셨다. 그래서 할머니는 내가 할머니 댁에 방문할 즘이면 박카스를 냉장고에 구비해놓고 계셨다. 할머니가 어디 동네 근처라도 가시는 길이면 항상 손녀딸인 나를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게 즐겁고 재미있었다. 어릴 때는 방학이 되면 오빠와 함께 할머니 댁에 가서 일주일 가량 지내고 오고 그랬다. 그게 나의 추억이 묻은 방학의 일상들이었다.



그렇게 거닐었던 길을 할머니와 자전거를 끌고 가며 걷고 있으니 걸음마다 추억이 묻은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건 내가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시간들이었다.



걷다 보니 자전거 가게에 도착했다. 할머니께서 자전거에 바람이 빠졌다고 넣어달라고 자전거 사장님에게 말하자 사장님은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왜 그러셔~ 알아서 넣어보세요."라고 했다. 듣기 좋은 말투는 아니었고 내가 느끼기에 핀잔을 주는 것 같은 언어들이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어떻게 하면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노인네가 잘 몰라서 그러니 한 번 해주세요~"라고 하셨다. 부탁하는 입장이고 웃으면서 말하는 게 나으니까 나오는 할머니의 방법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 사장님은 딱딱한 말투로 "이거 이렇게 풀려서 넣고 이렇게 하고, 그럼 되잖아요. 빨리 해보세요. 할 줄 아셔야 돼요"라고 했다.



할머니께 예의 바르지 않게 대하시는 건 손녀인 내가 볼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난 어차피 자전거 바퀴 바람을 넣어야 했고, 이 사장님과 나쁜 대화를 할 필요가 없고, 할머니의 손녀딸을 아끼시는 마음이 있었으니 내 손을 내밀어 자전거 바퀴 바람을 넣는 방법을 익혔다. 바람이 유난히 거세게 부는 날 맨 손으로 바퀴 바람을 넣고 있으니 사장님이 싫어할만도 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한 바퀴는 사장님이 넣어주시고 다른 한 바퀴는 내 손으로 직접 넣었다. 사장님은 약간 츤데레 성격이셨는지 틱틱거리는 말투로 그래도 애써서 알려주셨다. 바퀴를 다 넣은 다음에는 "사장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제야 마스크 너머로 웃음이 묻어나는 걸 볼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자전거 바퀴 바람을 넣고 나니 눈이 조금씩 오고 있었다. 할머니와 눈을 맞으며 걸었다. 10대, 20대 때는 내 기분 좋고 나쁜 것만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세상에서 말하는 숫자 기준으로 나이가 들다 보니, 굳이 애써서 기분 나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대부분의 사람은 최선을 선택하고 본인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걸 받아들이면 감정에 따른 행동을 선택하는데 한결 수월한 것 같다.



난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화가 나는 편이지만 어차피 자전거 바퀴 바람은 넣어야 했고, 사장님은 의도 없이 이야기했을 수 있고, 그 사장님이 추운 겨울날 자전거를 판매하며 힘이 들었을 수 있고, 사장님이 몇십 년 동안 배우고 익힌 자전거 바퀴 바람 넣기 능력을 나는 공짜로 배우는 거였고, 사장님의 노하우를 단 10분 만에 난 노력 없이 귀로 듣고 알 수 있는 거라면, 우리 할머니는 내가 자전거 바람 바퀴 잘 넣고 집에 안전하게 갔으면 하시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뇌로 스치면서 판단을 하고 결정했다.



기분이 좋고 나쁘고는 자연스럽게 드는 일이고 그것에 대해 좋다 나쁘다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만,  이후의 행동은 어떻게 할지 선택할  있다. 다른 사람이 겹겹의 시간 동안 은 노하우를 한순간에 배우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어떻게 행동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있는지, 기분 좋게 마무리할  있는지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발을 벗고 올라오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