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칠한 다정함 Sep 30. 2023

그러려고 유학 간 거야?

그 많은 돈을 쓰면서.

나는 2014년에 런던으로 미술 유학을 왔다. 거의 10년 전 일이니 나는 20대 중반의 혈기 넘치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서, 새로운 경험과 삶을 위해서 유학길에 오른다. 하지만 정말 그 처음의 목표를 이루고 간 사람은 몇 퍼센트나 될까? 유학을 가서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정착해 인생의 방향성이 달라진 사람도 많다. 어쩌면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보고, 그러려고 유학 간 거야? 하고 한심해할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돈을 써서, 너는 결국 뭐가 되었니?


환경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도 바뀌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한 장소에서의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 편이고 내가 생각했던 유학 전의 목표와 내 삶은 점차 달라져갔다. 성공한 작가가 되는 것은 나의 꿈이었는데, 나는 점차 그 꿈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 꿈에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나는 왜 '성공'을 원했던 것일까?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했고, 그 욕구가 강한 만큼 스스로를 인정하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나는 다양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간간히 미술계의 작은 이벤트들에 이름을 올리며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삶을 상태를 '실패'한 상태로 규정한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내가 전업작가가 되지 못하기에 이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기에 이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운 상태로 보는 것이다. 오늘 누군가가 나에게 전업작가가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는데, 그 답에 그 사람은 놀랐듯 했다. 나는 한 상태에 함몰되어 남들의 인정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아 졌다. 물론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을 계속해하면서 '성공'의 상태에 이룬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운이 없게도, 혹은 운이 좋게도 나는 그 사람들 중 한 명은 아니다. 


돈을 버는 직업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꼭 규정되어야 할까? 나는 이게 늘 고민이었다. 나는 실패한 예술가가 되었지만, 성공한 예술가들 중 많은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작품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다른 것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고 했다. 사회적 인정의 덫에 걸린 것이다. 작품의 가격에 따라 작가의 가격이 매겨졌고, 그 가격은 오르기도 했지만, 떨어지고 난 뒤에 다시 오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내가 선택한 삶이 다른 사람의 삶보다 낫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방식에 내가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많은 돈을 써서 유학을 왔고, 그 돈은 성공한 작가로 나를 이끌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삶에 투자된 듯하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록 가성비는 떨어지는 투자였지만, 결국 이 투자를 통해서 나는 변화하게 되었고, 유연해졌다. 나의 목표는 유동적으로 변하며 나는 변화하는 목표에 당황하지 않고 몸을 맡긴다.  



작가의 이전글 친구의 냄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