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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줄향 Feb 27. 2024

3. 도도한 고양이가 될거야.

콩이의 일기

‘끼이익~~’

이건 현관문 열리는 소리다.

그렇다면 누군가 집에 돌아왔다는 얘기.     

아니나 다를까, 엄마 집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콩아, 순아, 엄마 왔다, 다들 잘 있었니? 엄마가 너네 주려고 예쁜 밥그릇 사왔지...”     


앗, 순아, 순아, 오빠 다시 들어간다아~

나는 같이 놀던 순이를 옆으로 밀치고 얼른 소파 밑으로 숨었다.     

잠시 후 엄마 집사가 2층으로 와서 불을 환하게 켜고 나를 찾는다.

“아니 순이는 아직도 여기서 울고 있네.

근데 콩이는 어디 갔어? 콩아 콩아...넌 여태 그 밑에 있는 거야?

이리 좀 나와봐, 얼굴 좀 보여줘라~~”     

순이는 엄마 집사가 안아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울음을 그쳤다.     

아니 쟤는 내 동생이지만 애가 어째 저렇게 촐싹거리는 거야, 저 아줌마를 언제 봤다고 벌써 저렇게 따라다니니... 진짜 나 자존심 상한다, 순이 너땜에.     


이 집의 ‘잘생긴 형아(순이가 나한테 저 오빠가 ’잘생긴 오빠‘라고 가르쳐 줬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형보다는 내가 좀 더 잘생긴 것 같다ㅎ)’가 저 커다란 창문의 커텐을 두 번 쳤다 걷었다 했으니까 오늘이 3일째다. 엄마 품을 떠나온 것이.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랑 같이 산 게 두 달 하고도 열흘...

엄마가 우리 삼형제한테 응가 덮는 법이랑 털을 깨끗하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몇 번이나 얘기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너희들은 엄마를 떠나서 어딘가로 떠나게 될 거야. 혹시 엄마랑 헤어지더라도 엄마가 이제까지 가르쳐준 대로 응가는 절대 남에게 보이지 않게 잘 덮어두고, 그러고 나서는 털도 잘 핥아서 항상 깨끗하고 단정하게 해야돼. 털이 긴 우리 노르웨이 숲 고양이들은 털빨이 정말 중요하거든. 아름다운 털이 곧 우리의 자존심이니까 간수를 잘 해야 된단다.’     

그러면서 엄마는, 우리 고양이는 누가 부른다고 해서 아무나 쫄래쫄래 쫓아가서는 안되고, 안아준다고 해서 덥썩 안겨도 안되고, 밥 준다고 허겁지겁 급하게 먹어서도 안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하다가는 ‘개냥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런 별명이 붙여진다는 건 특히 우리 노르웨이 숲 고양이로서는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우리는 바이킹 족과 함께 그 험하고 거친 파도를 누비며 북유럽의 혹독한 날씨에도 눈 깜짝 안하던 용맹한 고양이의 후예로서 반드시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엄마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래 나도 엄마가 가르쳐 준 그대로 잘 해서 꼭 엄마처럼 도도하고 아름다운 고양이가 될거야’라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사흘 전, 바로 그날이 왔고 순이랑 나는 새로운 집사네 집으로 이사를 왔다.     

엄마랑 헤어진 게 맘이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의연하게 넘기려고 노력 중이고, 게다가 순이까지 같은 집으로 왔으니 내가 오빠로서 좀더 늠름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순이 저것이 이 집에 오자마자부터 지금까지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저렇게 웅앵웅앵 울면서 온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어서 나까지 순간순간 울컥해지는데 그렇다고 동생 따라서 오빠인 나까지 울 수는 없잖은가.      


게다가 순이는 벌써 엄마, 아빠, 형아 집사가 나타나면 발치를 따라다니면서 마치 안아달라는 듯이 냐옹냐옹거리다가 품에 안기면 금방 조용해진다.

순아, 그러지 좀 마, 너 그러다가 개냥이 된다구, 제발 고양이 체면을 좀 지키라구~~     


그래서 나는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중이다.

집사들이 나타나서 아무리 애타게 내 이름을 불러도 나는 절대 소파 밑에서 나가지 않는다.

어저께는 애가 닳은 엄마 집사가 내가 젤 좋아하는 닭가슴살까지 가져와서 나를 꼬드겼지만 나는 몇 번 코만 벌름거리고는 의연하게 숨숨집 뒤로 들어가버렸다.

순이가 저러니까 나라도 고양이 본연의 도도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게다가 순이는 아직도 계단을 내려가면 어딘가 엄마가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눈치다. 이제 엄마를 다시 볼 수는 없는 거라고 밤에 우리 둘만 있을 때 내가 몇 번이나 타일렀건만 아직 철이 없는 순이는, 그럴 리가 없다고, 자기는 엄마를 꼭 찾고야 말거라고 나한테 다짐을 하는거였다.

'아이고, 내 동생 순이야. 정신 좀 차리렴, 우리는 이제 엄마로부터 독립을 한거라고, 독립을.'     


그래도 순이 덕을 본 게 한 가지 있긴 있다.

순이가 엄마 찾으러 갈거라고 유리창 앞에서 이틀 내내 울어대더니 드디어 오늘 엄마 집사가 결심을 했다. 아침 일찍 아줌마한테 전화해서 상의를 하더니, ‘네네, 알았습니다. 너무 울어대니까 문을 열어줘야 할 것 같네요, 못보게 하니까 더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라고 전화를 끊고는 짜잔... 1층으로 내려가는 유리문을 열어줬다. 순아, 너 그거 하나는 잘했다ㅋㅋ     

순이가 꼬리를 흔들며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니 나도 아래층이 너무너무 궁금해서 당장 내려가보고 싶지만 그래도 노르웨이 숲 고양이의 자존심이 있지, 문 열리자마자 둘 다 득달같이 내려가서 구경하기는 좀 체면이 깎이는 것 같아서 오늘 하루 종일 이 궁금함을 꾹꾹 참고 있는 중이다.    

 

지금도 저기 아래 1층에서 순이가 나를 부른다.

'오빠 오빠 콩이 오빠, 좀 와봐, 여기 1층에 재밌는게 많아. 어서 내려와 보라니까.'     

아유, 저 눈치없는 순이.

조용히 좀 해, 이 집 식구들 다 잠들고 나면 나도 내려가 볼거야.

그때까지는 나는 여기 2층 소파 밑에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일거야, 아무리 나 불러도 소용없어.

나는 절대 개냥이가 될 수 없다니까.

우리 집안의 명예가 있지 두 마리 다 개냥이는 절대 안된다고. 그러니까 고만 좀 부르라고~~.


내가 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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