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준 Oct 09. 2023

사주풀이

살아봤던 곳이라 그런지 부산에서의 북토크는 너무도 편안했다. 나를 불러준 책방에서 여태껏 내가 쓴 책들에 관해 들려드리는데, 사투리를 고칠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에 와준 사람들과 한마음이 된 것 같았다. 부산에서 살고 있는 작가 친구 한 명도 와줬는데, 북토크가 끝난 뒤 그 친구와 저녁을 같이 먹기로 돼 있었다.


서면에 있는 한 식당에 앉아 나는 서둘러 이 허기를 달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앞에 앉은 친구는 고민이 있다며 나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과연 작가로서 서울이 아닌 지방에 머무는 것이 옳은가 하는 고민이었다. 자꾸만 소외감이 든다는 친구한테, 그래도 네 책은 서울에도 잘 팔리지 않느냐 배부른 소리 따윈 집어치워라, 내 속마음을 전달하진 못했다.      


밥을 먹었으니 반드시 커피를 마시러 가잖다. 차를 가져온 친구는 중앙동에 있는 한 작은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 자주 와서 사장님과도 가까운 사이라는데, 물론 커피도 맛있지만 여기 사장님이 사주를 전문가처럼 보실 줄 안단다. 실내는 테이블 서너 개 놓인 고즈넉한 카페였다. 둘 간의 대화를 잠시 엿들으니까 내 친구는 이미 사장님으로부터 사주풀이를 몇 차례나 받아본 것 같았다. 마치 내 차례인 냥 친구가 나의 생년월일시를 물어본다. 지금 손님이 아무도 없고, 사장님 역시 반갑게 사주를 봐주겠다는 의지이시다.      


생전 처음 받아본 사주풀이에서 나의 사주는 ‘나무’라고 한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또 내 사주엔 아내가 없다고 한다. 그렇구나 했다. 그런데 나는 글을 쓰는 능력과는 별도로 스스로 돈을 벌 줄 아는 능력이 없다고 하신다. 옆에서 간간히 훈수를 두던 내 친구를 끌어들여서는, 너는 돈 버는 재주 하난 타고났다 하시며 구태여 나하고 비교를 시키신다. 나는 거기에서 확 달아오르고 말았다. 사장님의 입으로부터 풀리는 내 사주에 맞서 하나하나 입씨름을 벌이기 시작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ktx를 예약해 놨었는데 취소시키고 사장님의 사주풀이를 듣는 중이다. 한번은 사장님께 나를 가리키시며 “이 친구 보니까 티는 안 내는데 혼자 있을 때 엄청 열심히 하는 친구네.” 내 친구도 듣도록 말씀하신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칭찬으로는 들리지가 않았다. 열심히는 하지만 돈을 못 버는 애. 지금의 내 모습을 들춰내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카페가 문 닫는 시간이 다 돼서야 사주풀이는 끝났고, 복비는 필요 없다는 사장님께 내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리고 나왔다. 나는 친한 동생네 자취방으로 가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유를 물어오면 동생에게 술이나 한잔 마시러 가자 하고 오늘 있었던 사주풀이에 관해선 없었던 것처럼 굴 것이다.











이전 05화 경주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