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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Oct 24. 2023

출근길

짧은 제주살이 중에

오전 출근길에 빙글 돌아 귤밭의 테두리를 지난다. 오직 돌멩이로만 쌓아 올려 누구나가 넘나들 것처럼 생긴 귤밭의 돌담은 저래 봬도 오직 귤밭의 주인만이 통과할 수 있다. 일제히 혓바닥을 내민 채 여름을 만끽하는 중인 잎사귀들과, 잎사귀들 못지않게 무수히 달려 있는 청귤들, 돌담을 지어 놓은 돌멩이들까지 모두 다가 동그라미와 닮아 있네 혼자서 생각하면서 지나간다.    

  

그런데 걸을수록 자세히 눈에 보이는 건 다름이 아닌 전깃줄이다. 수많은 동그라미들의 공중을 가로지르며 새들이 가끔 앉아서 쉬어가는, 이 섬 안에 곡선들만 들어 있는 게 아쉬웠던 누군가가 손 글씨로 그려 놓은 듯 삐뚤빼뚤한 직선. 도시에서 봐오던 건물들과 얼기설기 뒤엉킨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났다. 오전 일찍부터 일하러 가는 길이 맞나 싶을 만큼 한가로운 분위기이다. 내가 봐도 내 모습이 마치 유행을 좇아 잠깐 제주살이를 하러 온, 여행객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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