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준 Oct 22. 2023

커피

타고나길 위가 허약한 나는 간헐적으로라도 커피를 끊고 산다. 카페에서 도저히 못 참겠으면 다른 음료를 시켜 놓고 같이 온 사람 걸 한두 모금 뺏어 마신다. 그러고서는 꼭 평가를 내린다. “이 집 커피 잘하네.” 지가(→제가) 언제가 커피에 대해 알았다고. 그러게. 나는 언제부터 커피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걸까.




“학준이 일로 와서 이것 좀 마셔봐.”     


막내이자 홀 담당인 나는, 길게는 5년이 넘게 일해 온 형, 누나들의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문이 들어오지도 않은 라테를 세 잔씩이나 뽑아 놓고 사장님이 서 계셨다. 나보고 왜 마셔보라고 하는지 물을까 하다가, 집어넣었다. 홀만으로도 버거워 주방의 일은 파악조차 못 하고 있는 난데, 괜히 물어봤다간 뜨내기처럼 보일 것 같았다. 나는 세 잔 가운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 잔을 마시곤 내려놓았다.     


“뭐해? 세 잔 다 마셔봐야지.”     


“네?”     


“다 마셔보고 어떻게 다른지 얘기해줘 봐.”     


그러니까 커피를 마셔보는 걸로 끝이 아니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내려진 세 잔을 내가 다 마셔본 다음 그 맛의 차이점에 대해 들려달란 말이었다. 누가 좀 도와주길 바랐는데, 형, 누나들은 네가 한번은 겪어야 될 관문이라는 듯 멀찌감치 지켜보기만 했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면서도 앞으로의 설명에 대해 걱정했다. 곧바로 질문이 날아든다.     


“어때? 말해봐.”     


똑같이 쓴맛밖에 기억이 안 났지만     


“세 번째 깨 제일 깔끔해요. 이건 좀 텁텁해요.”     


그러고 나선 사장님의 반응을 은근슬쩍 살피는데     


“그래?”     


놀랍게도 내 표현을 진지하게 되새기고 계셨다. 내 말마따나 세 번째 깨 젤 나은지 다시금 마시면서 본인의 판단과 비교도 해보셨다. 나는 죄송스러운 혀를 감싸면서 다행히 주방을 잘 벗어났다.     


그 후로도 쭉 여러 잔을 뽑아놓고 나를 부르곤 하셨다. 나는 그때마다 ‘쓰다’와 경쟁할 만한 표현을 떠올리며 주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진실로 받아주시니까, 나 역시도 과연 내가 지어낸 표현들이 이 한 잔 안에 담겨 있나 의심하고 또 마셔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걸 계속했더니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맛이 생겨버렸고, 나는 조금 신 맛이 나는, 다시 말해 산미가 있는 커피를 좋아하게 됐다.




한 모금 빼앗아 마셨더니 같이 앉은 친구의 커피에서 내가 좋아하는 신맛이 난다. 친구에게 내 것도 한번 마셔보라 하고 훔치듯 또 한 모금 뺏어 마셨다. “이 집 커피 깔끔하네.” 끊고 있는 커피를 한동안은 계속 끊고 살 거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장님으로부터 배운 ‘맛 평가’, 그것만은 절대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생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