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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백 Feb 04. 2022

애완 쌀벌레

태어나서 처음 쌀벌레 잡은 이야기

몇 달 한국에 다녀온 사이, 집에 있던 쌀에 그만 벌레가 생기고 말았다. 가기 전 냉장고도 다 비웠고 이것저것 정리를 많이 했는데, 쌀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다 먹지 않은 쌀을 제대로 밀봉하지 않아서 생겼나? 싶었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뜯어본 다른 쌀자루 역시 벌레가 생겼다. 아니, 이건 뜯지도 않은 새 쌀인데 어떻게 벌레가 들어간 거지?! 새까만 벌레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릴 때 보았던 이집트 미라 영화에서처럼 그것들이 내 몸을 기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5kg씩 다섯 자루가 있었는데, 하나는 시댁에 드렸고 하나는 우리가 먹는 중이었다. 즉, 나머지 세 자루가 모두 새 쌀인데 그중 하나를 뜯어보니 벌레가 생겼단 말이다. 어찌 뚫고 들어갔나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애초에 공장에서 만들 때부터 그 안에 쌀벌레 알이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참고로 이 쌀은 베트남 쌀이었는데... 그럼 베트남에서부터 아프리카까지 와서 결국 부화를 했다는 것인가? 더 소름 끼치는 상상이었다.


그렇다고 약 17~18kg의 쌀을 버릴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먹을 게 없어서 굶고 있는 세상에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까만 벌레들이 물만 닿으면 바로바로 쉽게 죽는다는 것이었다. 검색해보니 밥 맛이 좀 떨어질 뿐, 잘 씻어내면 괜찮다고 했다. 그래, 그럼 잘 씻어서 먹어보자. 그 뒤로 며칠 동안 볶음밥을 주로 해 먹었다. 닭고기 볶음밥, 소고기 볶음밥, 새우 볶음밥, 오징어 볶음밥 등… 질리도록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쌀벌레 안부를 물어보았다.


“니 그때 그 쌀벌레, 다 잡았나? 우쨌노?”

“아니, 그냥 먹을 때마다 씻어서 먹고. 나머지는 자루 안에서 살고 있다.”

“에? 아직 다 안 잡았더나?”

“아니, 씻으면 빨리 먹어야 하잖아. 어차피 다 못 먹는데. 그래서 그냥 키울라꼬. 엄마, 내 여기서 쌀벌레 키우고 있다. 내 애완 벌레다, 애완 쌀벌레.”


엄마는 그렇게 두면 계속 더 많아질 거고, 걔들이 쌀을 계속 갉아먹어서 더 부스러기가 될 것이며, 쌀 맛과 품질이 떨어진다고 했다. 베란다에 나가서 햇볕에 쌀을 펼쳐두면 벌레들이 다 나올 거라고도 했다. 아니, 그렇게 기어 나온 벌레들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다시 유턴해서 다 우리 집으로 들어오면 어떡해? 지금은 자루 안에서 나오진 않고 그 안에서 옹기종기 지내고 있단 말이다! 그냥 키우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쌀이 계속 가루가 되는 것도 싫고, 벌레들이 그 쌀을 먹고 점점 더 많아지는 것 역시 싫었다. 그래서 벌레를 잡기로 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쌀벌레를 잡는 중이었다. 차마 한 자루를 다 쏟아내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벌레들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쌀을 조금씩 퍼서 골라내고 합치기를 반복했다. 한 마리씩 야금야금 죽이고 있는데, 순간 내가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렇게 벌레 생긴 쌀을 먹겠다고 잡고 있을까? 아니야, 한국이면 애초에 쌀 좀 내버려 두었다고 이렇게 벌레가 생기지도 않았을 거야. 만약에 생겼다고 해도… 그래, 내가 아는 나는 그 쌀을 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다 씻어서 떡이라도 만들어 먹었으려나?


이런저런 잡념으로 벌레를 잡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아직 다 골라내지도 못했는데, 여전히 뜯지 않은 쌀자루가 남아 있었다. 허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고, 목도 뻐근했다. 그날은 그렇게 끝을 냈다.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잡았지만, 내가 걔들을 없애는 속도보다 걔들이 자라나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았다. 절망적인 과정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속도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째 벌레와의 전쟁을 벌이며 힘들어하고 있는 나를 본 남편은 내 눈알이 빠질까 봐 걱정스러웠는지, 나머지 쌀은 나눠주자고 했다. 나눠주자고? 이걸? 대체 누구한테? 벌레가 생긴 걸 뻔히 알면서 누구한테 어떻게 이걸 준단 말이야! 나는 차라리 버리면 버렸지, 줄 수는 없다 했다. 그러자 남편은 먹을 수 있는 쌀을 버리긴 왜 버리냐며, 나눠주면 그 사람들이 알아서 벌레 잡고 잘 먹을 거라고 했다. 주면 오히려 좋아할 사람들이 많다고…


나는 꼬박 하루를 고민했다. 진짜 이걸 줘도 된다고? 뭐라고 하면서 준단 말이지? 사실 벌레가 좀 생겼는데, 그래도 너희들 좀 먹을래? 우리도 먹고 있단 걸 강조하면서 말해야 하나? 본인들을 거지라고 생각하는 줄 알고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그냥 주지 말까?



다음날 오전, 결국 슬쩍 물어보고 반응을 본 뒤에 괜찮으면 쌀을 주기로 했다. 점점 더 맛이 없어져 갈 많은 쌀들이 아까워서 말이다. 건물 관리해주는 아저씨와 우리 집 가사도우미, 남편 가게 직원 두 명에게 물어봤다. 기분 나쁘지 않게 잘 말하라며 남편에게 거듭 당부했다.



결론은… 그들 모두 정말로 좋아했다. 베트남 쌀과 함께, 집에 있던 세네갈 쌀과 튀니지 파스타까지 한 보따리씩 나눠줬다.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좋아하면서 가져갔다. 벌레가 나올 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 그 벌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가 잘 알아.”라며 괜찮다고 했다. 기분 나쁘진 않을까 고민했던 내가 좀 유별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나머지 쌀을 내가 직접 먹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쌀을 먹지 않고 전부 다 그 사람들에게 줬더라면, 엄청 미안했을 것 같다.



이튿날, 남편이 커다란 포대자루를 가지고 왔다. 1년은 먹어도 될 양의 라임이 들어있었다. 가게 직원 중 한 명이 고향에 다녀오면서 직접 농사지은 라임을 가져온 것이었다. 다른 직원은 땅콩 한 자루를 주고 갔다. 어제 챙겨준 쌀에 대한 보답인 걸까? 에고, 다시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데… 하여간 정 많은 사람들이다. 부엌 바닥 가득 펼쳐진 라임과 땅콩을 보며, 나눠준 쌀에는 우리 것보다 벌레가 덜 생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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