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좋은 원두는 어디로 가나
이제 한국 사람들 중에서 커피를 안 마시는 사람 찾기가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전문 지식은 좀 부족할 수 있지만 내 취향만큼은 잘 알고 있다.
요즘 한국에는 널린 게 커피숍이고 집 앞 몇 발자국만 나가면 맛있는 커피를 언제든지 마실 수 있다.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 새로 오픈한 카페 찾아다니는 재미로 살았고, 괜찮은 머신을 사서 ‘홈’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 몇 년 전 아일랜드 스타벅스에서 일할 때에는 직원들에게 매달 원두를 줬는데, 다양한 원두를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매장에서 바로바로 에스프레소나 필터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다는 것 역시 최고의 장점이었다.
그래서 내가 세네갈로 오겠다고 결정했을 때,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커피였다.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케냐… 아프리카의 맛있는 원두로 만든 커피를 더 많이, 더 빨리, 더 신선하게 - 심지어 원두를 골라서 -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착각이고 헛된 기대였지만 말이다. 같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고 해서 모든 아프리카 국가에서 질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의 커피숍은 대부분 캡슐커피를 쓰고, 가끔 인스턴트커피를 타주기도 한다. 심지어 그런 커피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외국물’ 좀 먹은 사람들이고 전망 좋은 자리에 한 시간 두 시간씩 앉아 있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세네갈 사람들이 좋아하는 커피가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옛날 세네갈의 종교 지도자가 즐겨 마셨다고 하는 ‘카페 투바’다. 커피에 향신료를 넣은 것으로, 워낙 독특하다 보니 세네갈을 대표한다고 해서 가끔 인터넷에서 “꼭 마셔봐야 할 세계 각국의 커피” 리스트에 오르기도 한다.
나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볼 때에는 그 맛이 많이 궁금했는데, 막상 마셔보니 내 입에는 썩 맞지 않다는 걸 바로 알았다. 진한 커피인데, 매운맛이다. 설탕도 넣었어야 했나?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시거나 라테를 만들어 마시면 더 괜찮다는 건 몇 번의 시도 끝에 알았다.
다른 하나는 설탕 듬뿍 넣은 인스턴트커피로, 이것이야말로 세네갈의 ‘국민 커피’가 아닐까 싶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모여서 종이 소주잔 같은 걸 들고 마시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재래시장에 가면 작은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커피나 식혜, 오미자차 등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있는데, 마치 그런 수레가 세네갈에도 있다. ‘네스카페’라고 적혀있는 이 수레에서 파는 100원짜리 커피, 이게 이곳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다.
커피를 받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대부분 후루룩 마시고 떠난다. 양이 부족하다 보니 두어 잔 더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서 커피를 파는 사람이나 사러 온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가끔 모르는 사람에게 사주기도 한다. 100원으로 부담 없이 누군가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산 원두가 아프리카의 세네갈까지 오지 못한 게 참 아쉽다. 케냐 사람들도 좋은 원두는 수출하고 나머지 품질 낮은 커피를 마신다고 하는데, 세네갈에 사는 내가 인스턴트커피 마시는 게 뭐 어떤가 싶었다가, 그래도 좀 억울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기도 했다가, 왔다 갔다 그렇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마시는 건 인스턴트 가루 커피… “어떤 원두로 하시겠어요?” 하고 묻는 한국의 커피숍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