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이 된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들 중 가장 걱정했던 캐릭터가 스파이더맨이었다. 이미 다섯편의 영화가 나왔고 그 와중에 리부트도 되었으니 새 캐릭터라 하더라도 새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 스파이더맨이 단독 영화를 새로 만든다니 기대보다는 ‘이게 될까?’ 하는 의심이 앞선게 사실이다. 제작진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스파이더맨 : 홈커밍]은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잠깐 이전까지 스파이더맨 영화들의 전체적인 틀을 되돌아보자.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파이더맨은 자신을 노리는 적들을 상대하게 된다. 그러다 피터 파커가 가진 문제와 스파이더맨이 겪는 상황이 겹치게 되고 절망에 빠진다. 이후 다시 위험에 빠진 스파이더맨은 해결책을 찾고 악당을 상대해 이긴다. 그리고 피터 파커의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한다. 이번 영화 역시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차별을 둔 지점이 있다면 이번 스파이더맨에게 닥친 고민이 조금 더 가볍다는 점이다.
피터 파커는 시빌 워에서 토니 스타크가 만들어 준 스파이더맨 슈트를 갖게 된다. 이 모든 게 자신이 어벤져스가 되기 위한 시험이라고 생각한 피터는 하루하루 빠짐없이 성실히 ‘친절한 이웃’ 역할을 자청한다. 그러던 중 치타우리나 울트론의 전투 이후 남은 무기들을 개조해 이용하는 악당들을 발견한 스파이더맨은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면 인정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해 그들을 쫓기 시작한다.
앞선 두 프랜차이즈의 피터 파커에게 핵심적인 고민은 생활비, 학비 등 금전적인 문제였다. 피터는 직접 돈을 벌어야 하고 악당들은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찾아내 위협한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 홈커밍] 속 피터는 그런 고민을 크게 하지 않는다. 히어로 일을 하느라 일반인 피터의 삶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상황에 놓인다. 스파이더맨이 어벤져스에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피터 파커는 동아리도 관두고 학교 대표로 나가는 퀴즈대회에서도 빠진다. 그 누구도 피터에게 악당을 잡으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딱히 위협을 당한 것도 아니다. 사춘기 학생에게 특별한 일이 벌어졌을때 거기에 빠져들어 다른 일은 미루는 것이랑 똑같다.
스파이더맨을 위협하는 문제도 덜 위험해진다. 평상시 스파이더맨의 활동은 왠지 동네 문제 해결사 같은 것들이다. 새 스파이더맨은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해주고 고양이를 구해주며 그 행동들이 유튜브에 올라가는 모두에게 ‘친절한 이웃’인 셈이다. 그 어떤 악당도 스파이더맨을 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귀찮아하는 수준이다. 지금까지 조용히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꼬맹이 하나가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자신도 악당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어벤져스가 되고 싶기 때문에 끈질기게 들러붙는 것이다.
[스파이더맨 : 홈커밍]이 이전 영화들보다 가벼운 고민을 다룰 수 있는 이유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덕이다. 제작사의 톤이 가볍다는 뜻이 아니라 환경적으로 스파이더맨이 가볍게 놀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줬다는 의미다. 이미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이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이 나타난 스파이더맨이 모든 범죄자들의 눈총을 받을 일도 없고 딱히 원한을 살 일도 없다. 그러니 스파이더맨은 지금까지 숨어있던 불법 무기 거래 조직을 추적할 수 있고 피터 파커의 삶도 위협받지 않는다. 영화에서 스파이더맨이 해결하는 사건들의 대부분 사고나 의도치 않게 자신이 원인 제공한 사건들임을 생각하면 스파이더맨은 조금 더 안전한 환경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스파이더맨이 MCU에 들어가서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다. 스파이더맨이 다른 히어로의 그늘에 가린다거나 공을 빼앗기기도 하는 등 마음에 들지 않는 지점들도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던 스파이더맨이 좀 더 제 나이다운 고민을 할 수 있다는 데에서 만족할 만하다. 이번 스파이더맨은 고민에 빠져있는 히어로보다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점에서 이후 그의 활동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