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미가 Apr 28. 2023

치앙마이 도착, 첫 24시간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살아봤더니2


23:00 System is closed

공항에서 그랩을 불러 숙소까지 가는 데는 고작 10분. 너무 늦은 시간이라 무사히 체크인할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주차장 입구에서 반갑게 우릴 맞아준 직원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체크인 완료. 열쇠 두 개와 간단한 설명이 쓰인 안내문이 봉투에 담겨 있었다. 

숙소가 위치한 님만해민은 시끌벅적한 번화가였다. 밖에선 신나는 비트의 음악과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와 마치 축제장 한가운데 들어온 듯했다. 그러니까 조용한 휴식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새벽으로 넘어간 시간이라 적잖이 피곤했지만 이제 막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딘 우리는 흥분감과 허기에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술집에 가기엔 좀 부담스러워 숙소 앞 편의점에서 간단히 맥주와 요깃거리라도 사기로 했다. 편의점에 들어가니 흥분지수가 더 올라갔다. 우리가 좋아하는 카레와 국수 등 태국식 간편요리가 즐비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손님이 적지 않았다. 컵라면, 과자, 음료수 등 욕심껏 바구니에 눌러 담고 계산하기 위해 줄을 섰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돼서 계산을 하려는데 맥주는 안된다며 도로 꺼내놓는 게 아닌가. 직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System is closed.”

응? 시계를 보니 12시 1분. 자정이 넘었다. 불교국가인 태국에서는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술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 바로 앞에서 맥주를 샀던 사람은 유유히 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태국에 온 실감이 났다. 그래, 우리 같은 알쓰가 술은 무슨 술이야.




9:00 모닝커피

허기진 마음을 각종 편의점 푸드로 채우고 퉁퉁 부은 얼굴로 아침에 일어났다. 뜨거운 태양빛이 나를 감싼다. 이 낯선 장소, 낯선 공기 너무 좋다. 

문득, 모닝커피가 간절했다. 대충 지갑만 챙겨 숙소를 나서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카페를 향했다. 


로스트니욤 카페 Roastniyom Exclusive

아메리카노 60바트. 


카페인으로 머리를 깨웠으니 이제는 배를 깨울 시간. 바로 근처 골목에 모닝 노점상이 있다. 

스프링롤 40밧, 태국식 도시락 30밧, 샌드위치 15밧. 이렇게 사와서 테라스에 부려놓으니 제법 근사한 만찬이다. 

총 85바트니 한국돈 3천원 정도에 둘이서 이런 만찬을 즐길 수 있다니 여긴 천국이 분명합니다.




11:00 동네 산책

배도 채웠으니 천천히 동네 산책 해볼까. 아직 오전인데도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느껴진다. 님만해민의 알록달록한 건물들과 어우러지는 열대지방 특유의 푸르름이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겨울이었는데 갑자기 여름. 단순히 기온뿐만이 아니라 시간, 언어, 화폐, 사람들, 분위기 등등 시공간을 갑자기 뛰어넘었을 때 느껴지는 이 격차가 피를 끓어오르게(?) 한다. 

너무 더울 땐 에어컨 나오는 시원한 카페로 피신. 원님만 근처의 디저트 맛집을 찾았다. 




사루다 베이커리 Saruda Finest Pastry

10:00~21:00  타르트 200~300바트


Finest라 자신할 만큼 퀄 높은 디저트류로 유명한 맛집이다. 이중 나의 픽은 오렌지 타르트. 요거 하나가 200바트가 넘는다. 딱 우리나라 귤 만한 크기. 어쩜 표면 처리도 이렇게 흡사하게 잘 했는지? 안에 크림과 잼만 든 것 같지만 크게 달지 않고 정말 상큼하고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둘이서 "와, 맛있긴 맛있다!" 감탄 연발.





14:00 다시 숙소로

오후가 되자 날은 점점 뜨거워졌고. 결국 다시 숙소로 피신. 숙소 테라스에 앉아서 느긋하게 하늘만 바라봐도 좋았다. 절로 중얼거리게 되는 말. 아- 행복해.




17:00 저녁식사& 올드시티 산책

저녁에는 올드시티 쪽으로 향했다. 성벽 안의 오래된 도시. 고즈넉함과 화려함, 엄청난 교통체증으로 인한 소란스러움이 적당히 섞인. 적당한 가격대의 태국전통음식을 파는 식당을 발견해 첫 저녁 식사를 만족스럽게 마쳤다.  


춤 노던 키친 CHUM Northern Kitchen @Old City


저녁 먹고 천천히 걸어간 곳은 왓록몰리. 입장료 없음.

가려고 간 게 아니라 지나가다보니 너무 휘황찬란하고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리로 향했다. 사원 뒤쪽에 거대한 소원탑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축전을 붙이고 소원을 비는 것 같았다. 

이런 데 돈 쓰는 게 관광객의 의무 아니겠는가. 인당 60바트였나. 특이하게도 태어난 요일에 맞는 색깔이 정해져있었다. 왼쪽부터 일월화수목금토 색깔이란다. 남편은 월요일이라 빨간색. 난 생각 안나서 그 자리에서 검색을 했다. 그렇게 나는 토요일에 태어난 아기였음을 처음 알았다. 


토요일은 보라색. 자기 띠에 해당하는 동물에 동그라미를 치고, 이름과 소원을 적어낸 다음 커다란 장대로 줄에 건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는 비밀-(실은 아무것도 안빌었음. 이런 거 믿지 않는 파워T입니다)

밤에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낮에는 얼마나 예쁜 사원일지. 이런 멋진 곳을 입장료 안받고 구경하게 해주는 나라. 좋은 나라.

쪼리를 신고 15000보 넘게 걸었더니 발이 너무 아파서 중간에 풋마사지도 받고. 그 유명하다는 노스게이트펍에서 맥주 마시며 재즈공연 볼까? 하고 갔다가 어마무시한 인파에 놀라 그대로 돌아나옴. 그렇게 가벼운 맘으로 힙스터들 노는 곳에 가려했다니 스스로를 반성하며.



21:00 야시장

올드시티 북쪽 성벽 바로 건너편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걸 발견했다. 야시장이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야시장이라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이미 배가 어느 정도 부른 상태였지만, 많은 이들이 먹고 노는 이 분위기에 휩쓸려 우리도 간단한 안주에 맥주 한 잔 하기로. 하나에 10~20밧 하는 꼬치들을 골라 바구니에 담아내면 즉석에서 구워줬다. 매운 양념, 안매운 양념 선택할 수 있다. 우린 매운 양념을 골랐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딱 100밧(3800원)에 맞춰 구입한 꼬치 안주. 음료 가판대는 따로 있어 창 맥주(80밧, 3000원) 한병과 컵 두개 받아와 첫 날의 축배를!(문득 궁금해진다. 이런 야시장에서도 12시가 넘으면 술을 안 파나?) 술을 잘 못 마시는 우리 부부는 보통 한 컵을 나눠 마시는 수준인데, 이날은 500미리 한 병을 다 비웠다! 지나치게 과음한 거 아니냐며 서로 뿌듯해함(?)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입이 터진 우리 남편은 30밧(약 1000원) 짜리 대용량 수박주스와 족발덮밥까지 야무지게 사먹음.


맑은 햇살과 싱그러운 열대식물들, 마음을 달궈주는 뜨거운 열기와 항상 웃는 사람들, 자유로운 복장의 여행자들,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과 마사지……. 태국에 올 때마다 늘 감사한 마음이 된다. 천국이 항상 그대로 있어줘서. 열심히 돈쓰고 가겠습니다. 




*참고- 2022년 12월 시점의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글 홍아미

여행 에세이스트. 아미가출판사 대표. <제주는 숲과 바다>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미치도록 떠나고 싶어서> <지금, 우리, 남미> 등을 썼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비행기 안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