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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May 01. 2023

나도 디지털 노마드처럼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살아봤더니 3


둘째 날도 이른 아침 눈이 번쩍 뜨였다. 태국과 한국과 시차가 2시간 정도 되는데, 딱 2시간만큼 일찍 잠에서 깼다. 내 육체의 규칙적인 생체리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날 아침엔 근처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우리가 묵는 숙소가 호텔이 아닌 레지던스형 아파트먼트다 보니, 세제, 휴지 등 생필품이 하나도 없었다. 검색해 보니 400m 거리에 제법 큰 마트가 있었다. 가는 길에 꽤 유명한 치킨라이스 맛집이 있어 아침식사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kyoi chicken rice


미슐랭에도 오른 치킨라이스 맛집이라고 하는데, 과연 최고였다. 대개 한 메뉴만 오랫동안 파온 식당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는 듯하다. 우리는 믹스치킨라이스를 주문했는데 밥과 치킨을 곁들인 단순한 한 접시 음식이지만 정말 맛있었다. 닭도 보들보들했고, 닭육수로 지은 듯한 밥도 짭조름하니 부드러워서 몇 번 씹지 않아도 살살 녹는 느낌.



배불리 먹고 지척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관광객들보다는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좋은 Makro Mart다.



평소 마트 구경이나 장보기를 별로 좋아하는 편도 아니건만, 여행 오면 왜 이런 것도 재미있을까. 같은 야채도 모양과 크기가 달라서 신기하고,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희한한 식재료를 만나는 게 새롭고, 한국 음식과 식재료를 발견하면 그것대로 반갑고.





오늘은 같은 레지던스 건물 안에 있는 요가원에 등록하러 가기로 했다. 평소에도 꾸준히 요가를 해왔지만, 치앙마이에서는 더더욱 요가로 심신을 단련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 워낙 요가로 유명한 도시여서 그렇다. 


내가 등록한 요가원은 Annie Bliss Yoga


아주 작고 사랑스러운 스튜디오였다. 애니 블리스란 선생님이 한국인들 사이에 평이 좋은 듯했는데, 과연 그럴 만했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데 또렷한 발음으로 천천히 말씀해 주셔서 듣기 좋았다. 스튜디오가 작다 보니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가며 자세를 잡아준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치앙마이 오기 직전에 일산에 있는 소수정예 요가원을 등록해 10회권을 끊어 다녔는데, 10회를 다 채울 무렵까지도 내 이름을 익힌 선생님이 하나도 없었고, 소수인원임에도 못하는 자세가 있어도 자세를 잡아주지도 않았다. 나의 몸과 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프라이빗하게 인도해 주는 요가원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그래서 나름 거금을 지불했는데ㅠㅠ),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힘든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치앙마이에서는 과연 내 환상이 충족될 수 있을지, 살짝 기대해 보기로 했다. 


오후에는 매거진 마감을 해야 해서 근처에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옐로 코워킹 스페이스



치앙마이는 워낙 물가가 싸고,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라 불린다. 일하기 좋은 도시 랭킹을 매기는 노마드리스트닷컴(https://nomadlist.com/)이란 사이트가 있는데 볼 때마다 늘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는다. 지금 들어가 보니 리스본 다음으로 2위다. 작년만 해도 서울이 꽤 상위권에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찾기가 힘들다.(한참 내렸더니 84위에 있네;;) 아무래도 물가도 비싸고, 교통체증도 심하고....  살기에 썩 좋은 도시는 아니지. 우리가 지금 치앙마이에 와서 행복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노란색 간판을 단 커다란 건물이라 찾기 쉬웠다. 들어간 순간 약간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는데 첫 번째는 그 커다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서였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조용해서였다. 내가 예상했던 분위기는 적당히 여유로운 스터디카페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보다는 훨씬 치열함이 느껴졌다. 그 많은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치앙마이라는 한 도시에 모여 각자의 생계를 위한 일을 해내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이 살던 곳은 치앙마이보다 춥고, 각박하고, 숨 막히는 곳일 터였다(네, 서울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 따뜻하고, 여유로운 도시에서 이 바쁜 사람들이 비로소 숨을 쉬고, 지쳤던 몸과 마음을 회복한다. 문득, 치앙마이가 참 품이 넓은 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옐로 코워킹 스페이스의 첫인상이 나쁘진 않았으나 나에게는 별로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달 멤버십 가격은 3190밧(약 12만 원)인데 며칠에 한 번 정도로 슬렁슬렁 일할 사람에게는 조금 센 가격이었다. 물론 데이패스(239밧)도 있었는데 거기엔 커피나 음료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값이면 근처의 일하기 좋은 카페에서 두 사람이 음료는 물론 디저트까지 알차게 챙길 수 있었다. 치앙마이 카페는 대부분 초고속 와이파이를 구비하고 있었으니 일하기에도 꽤 좋은 환경이었다.





데이패스 대신 커피 음료를 주문하고 2시간 와이파이 이용권을 받았다. 카페에 앉아있으니 일하던 사람들이 가끔씩 카페에 와서 서로 대화를 나누며 교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남아공 사람, 스페인 사람, 독일 사람... 참으로 다양했다. 아, 한국 사람도 봤다. 어찌나 외향적인지 직원과 한참을 스몰토킹하다 갔다. (나도 외국어를 잘했다면, 아니 조금만 더 외향적이었다면 이런 곳에서 좀 더 국제적인(?) 교류를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도 잠깐 했음)


일을 마칠 무렵 어마어마한 스콜이 몰려왔다. 도저히 밖에 나갈 수 있는 비가 아니어서 숙소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을 호출했다. 우산이 없을 때마다 남편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하는데, 꼭 남편이 우산을 들고 올 때쯤 되면 비가 그치는 징크스가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사이좋게 우산을 들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카오소이 맛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야외 정원 같은 식당이라 푹 젖은 정글 한가운데서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양이 말도 안 되게 적은 카오소이였다. ㅋㅋㅋ 태국 국수는 왜 이렇게 양이 적은 것일까. 우리가 많이 먹는 것일까. 





여행 와서 열심히 일했더니 더 보람차다. 오늘은 제법 디지털노마드처럼 보낸 하루. 열심히 운동하고 일하고 맛난 거 먹고. 치앙마이의 둘째 날이었다. 



*참고- 2022년 12월 시점의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글 홍아미

여행 에세이스트. 아미가출판사 대표. <제주는 숲과 바다>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미치도록 떠나고 싶어서> <지금, 우리, 남미>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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