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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May 13. 2023

태국에서 보낸 감성 충만한 하루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살아봤더니 4

여름을 좋아하는 나에게 치앙마이 날씨는 참 이상적이다. 낮에는 야외에서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덥고(걸어 다니기에는 꽤 많이 덥고) 아침저녁으로는 기분 좋을 정도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아닌 모양이다. 더워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녘 시원한 거실 타일 바닥에서 겨우 잠이 들었다. 

침실에서 에어컨을 틀면 남편도 시원하게 잘 수 있겠지만, 기온이 내려가면 나는 심하게 기침을 한다. 재미있는 건 내 기침 소리에 남편은 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는 기침을 하면서도 동시에 잘 잔다는 것이다. 잘 못 자는 남편은 이러나저러나 고역이다. 


아무튼 나는 셋째 날에도 상쾌하게 잘 자고 일어났다. 거실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이 깨지 않게 조심해서 노트북을 챙겨 나와 근처 카페에 갔다. 한국에선 아침 일찍 뭘 잘 먹지 않는데, 태국에선 이상하게 눈뜨자마자 배가 고프다. 결국 크루아상 하나 추가로 더 주문해서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음.ㅎㅎ



카페서 일하고 있는데 10시 반쯤 일어난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점으로 먹을 것을 사가기로 했다. 오늘도 모닝노점상으로.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줄을 서서 구입해야 했다. 이름은 모르지만 대충 맛있어 보이는 걸로 가리켜서 도시락 2개를 샀다. 개당 45밧. 오늘도 3천 원에 한 끼니가 해결된다.






전날 내린 폭우 덕인지 오늘은 한낮임에도 그렇게 덥지 않았다. 콜택시를 불러 동굴사원으로 유명한 왓우몽에 놀러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꽤 깊은 숲 속으로 꼬불꼬불 들어가야 했는데, 정글 속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멋진 사원이었다. 




왓우몽(Wat U-mong)은 ‘터널사원’이란 뜻이다. 깊은 터널 속 불상이 인상적인 사원이다. 1297년 즈음 처음 창건되었고, 터널은 이후 란나왕국의 한 왕에 의해 건축된 것이라 한다. 불교를 부흥시키기 위해 당시 많은 사원이 지어졌는데, 어떤 이유로 이런 깊은 숲 속에 굴을 파고(당시로선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그 위에 거대한 탑을 쌓아 올리고 했는지 궁금했다. 



터널 안에 들어서기 전 바깥에 목 잘린 부처상이 방치되듯 널린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랑종>을 떠올리게 하는 으스스함. 어딘가에 발굴된 유적들을 늘어놓은 건가 했는데, 찾아보니 인근 예술대학 학생들이 버마지배 시대의 아픔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해 놓은 일종의 설치예술작품이라 했다. 





이리저리 뚫린 터널 곳곳에 빛나는 불상이 짠- 하고 나타나 순례 다니듯 기도를 드리는 구조가 독특하게 느껴졌다. 동남아의 유적지들이 대개 그렇듯이 터널사원의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벽화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긴 했지만 거의 다 떨어져 나가 이전의 아름다움을 상상해 볼 뿐. 7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겠는가. 인위적인 구조물이지만 서서히 자연의 일부분처럼 흡수되는 듯, 터널 곳곳엔 박쥐들이 옹송그리고 매달려 잠들어있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터널사원을 나와 위쪽으로 올라가니 커다란 탑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역사성이 느껴지고, 규모가 상당한 편이다. 그 옆으로는 깡마른 스님상이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다. 




천천히 산책을 하며 연못 쪽으로 가니 엄청난 비둘기 떼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둘기를 혐오하는 편인 우리나라 사람들로선 절대 피하고 싶은 곳일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비둘기가 인간에게 피해를 끼친 것에 비해 좀 억울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그냥 다가갔는데, 음.. 그렇다 하더라도 내 얼굴을 향해 푸드덕거리며 가까이 날아올 때는 그만 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주변의 태국인들을 보니 비둘기를 어깨에도 앉히고 머리에도 앉히고 잘만 놀더라. 이 또한 참으로 신기한 문화체험이다. 우리나라 비둘기들은 엄두도 못 낼 친화력이다. 



왓우몽사원은 비둘기뿐만 아니라 닭이며 개며 박쥐며 온갖 동물을 많이 볼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사원이라 더욱 좋았다. ‘숲 속의 사원’이란 별칭답게 숲이 곧 사원이고 사원이 곧 숲인 경지랄까. 내려오는 길 마음이 산뜻해졌다. 





길을 따라 내려와 더위도 식힐 겸, 그 유명하다는 넘버39카페에 들어갔다. 파란 물감을 풀어낸 인공연못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꽤 아름다운 카페였다. 마침 인디밴드 음악 공연이 시작되어 일석이조였다. 








더위를 좀 식히고 좀 더 걸어내려가니 ‘반캉왓’이 지척이었다. 반캉왓은 일종의 공예마을로, 예술인들의 스튜디오 겸 상점들이 모인 곳이었다. 곳곳에서 워크숍과 체험프로그램도 많이 열리는 듯했다.




아기자기한 골목 분위기도 멋졌고, 판매하는 물건들도 개성 있고 예뻤다. 자연스럽게 조성이 된 건지, 지자체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건지 궁금했다. 예술적 감성이 폭발하는 곳이었고, 물건도 꽤 많이 샀다(아티스트 제품이기 때문에 가격대가 저렴하진 않다).




태국 스타일의 감성에 폭 젖었던 하루. 



*참고- 2022년 12월 시점의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글 홍아미

여행 에세이스트. 아미가출판사 대표. <제주는 숲과 바다>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미치도록 떠나고 싶어서> <지금, 우리, 남미>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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