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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가 Jun 19. 2023

아침 7시, 카페로 출근합니다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살아봤더니 9





오늘도 아침 7시에 저절로 눈이 뜨였다. 산책할 겸 천천히 동네를 걷다가 라테로 유명한 리스트레토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가면, 좀 한산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님만해민 로드에서 한두 블록 사이에 두고 본점과 분점이 있는데, 나는 본점으로 향했다. 규모는 좀 작지만 더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이른 아침임에도 사람이 적진 않았는데, 그래도 자리는 여유 있는 편이었다. 나처럼 혼자 온 손님도 꽤 있었다. 라테 종류만 해도 열 가지는 넘는 듯했다. 라테아트 우승자라고 했나. 라테 아트에 꽤 공을 들이는 듯한 비주얼이었다. 가격은 88~99밧 정도. 3000원대. 가장 중요한 맛은..... 적당히 달콤하고 맛있었다! 다른 라테도 마셔보고 싶다!





안쪽에 노트북 하기 좋은 1인용 좌석도 좀 있고, 음악도 좋고, 직원들도 적당히 무관심하면서 친절하고, 집중하기 좋은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인터넷이 빠르다! 일하기 좋은 곳을 이렇게 발견하다니!ㅋㅋㅋ 집 앞 로스트니욤 카페도 나쁘진 않았지만 너무 밝고 오픈되어 있어서 좀 분산되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그래서 잘 가게 되지 않았는데, 아마 이곳으로 매일 출근하게 될 것 같은 기분.



그렇게 2시간 정도 글을 좀 쓰다가 나왔다. 그래도 아직 오전 10시. 숙소로 돌아갈까 하다가 문득 네일아트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손발톱 미용에 그리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왠지 여행 오면 안 하던 짓도 해보고 싶은 법이니까. 근처 지도를 보고 문 연 네일숍 중에 적당히 후기 좋고 가격 괜찮은 곳을 골라 들어갔다. 


님만네일


네일과 패디를 한 번에 받기로 했다. 직원 2명이 붙어 하나는 손을, 하나는 발을 맡아 완전 야생상태였던 나의 손발톱을 잘라주고 갈아주고 마사지해 주고...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컬러는 2가지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밝은 색을 골랐다.  




손발 다 해서 600밧(약 22000원). 꽤나 만족스러웠다. 뭔가 태국에 어울리는 손발톱과 의상을 장착한 느낌이랄까. 한국에선 절대 밖에서 입지 않을 옷, 고르지 않을 색깔로 나를 바꿔간다. 인간도 어느 정도는 카멜레온 같은 면모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처한 환경에 어울리는 색깔에 물들어간다. 한국에서 내가 가장 많이 고른 색깔이 회색이었다는 걸 상기하니 조금 슬퍼지려고 한다. 성장기 시절 나를 둘러싼 환경이 회색 시멘트와 뿌연 하늘이 아니라 울창한 숲과 생명력 넘치는 나무들, 쨍한 햇볕과 새파란 하늘이었다면 나는 좀 더 컬러풀한 인간이 될 수 있었을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회색이나 베이지색 같은 희끄무레한 색깔의 옷을 다시 입게 될 것을 안다. 여행지에서만 나는 잠시 유채색일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카페 가서 글도 쓰고 네일아트도 받고 했더니 몹시 허기가 졌다. 돌아가는 길에 평소 먹고 싶었던 도넛(채비치뱃)도 한 상자 사고(4개 80밧) 치킨라이스도 2개 포장해 숙소로 돌아왔다. 


막 잠에서 깬 남편이 몹시 피곤해하며 나를 맞았다. 한국에서도 태국에서도 늘 피곤하고 아픈 우리 남편. 파워 T인 아내라 잘 공감은 못해주지만 뭔가 해결책을 찾아 도와주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이 될 텐데, 보통 원인조차 내가 잘 이해가 안 가는 영역이므로(원인 모를 두통과 불면, 스트레스 등등) 해결책을 찾기가 힘들다. 아무튼 불쌍한 남편은 아내가 조달해 준 식량을 맛나게 먹고 또 거실 타일 바닥에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시간이 정오에 이르면 사람을 태워 죽일 기세로 태양이 이글이글하다. 그럴 땐 숙소를 벗어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쾌적한 실내에서 뒹굴거리며 웹툰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과자도 먹고.... 이런 시간마저 행복이다. 


늦은 오후 해가 꺾이고 나서 아직 못 본 디자인위크 전시를 보러 TCDC라는 도서관에 가봤다. 방콕에서도 도서관에 들어가 본 적 있는데, 태국은 도서관조차도 밝고 활발한 느낌이다. 우리나라 도서관처럼 답답하고 우중충한 느낌이 전혀 없다. 입구에 직원들이 있었는데 밝게 웃으며 입장에 제지하지 않는 걸로 보아 누구나 출입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곳인 듯했다. 나중에 한번 일하러 와보기로 했다. 



웨어하우스라는 건물에 열리는 전시를 보고 1층에 독특해 보이는 카페(SINC)가 보여 들어가 봤다. 와... 완전 힙하고 멋있다. 



치앙마이는 카페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한 도시의 인기 카페들은 트렌드 같은 게 있는데, 치앙마이는 그런 게 없다. 이렇게 다양한 콘셉트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튼 영화 <화양연화>나 홍콩 특유의 다크멜로 분위기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 쌍화차 같은 음료도 개성 있었다.(이름은 기억 못 함)



지도를 보며 좀 더 걸어 다른 전시관도 찾았다. 여기는 폐건물 전체를 마치 전시작품처럼 만들어놨다. 지역경제와 환경 문제를 연결시킨 듯한 다양한 전시도 인상적이었다....라고 했지만 사실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이런 걸 보러 다니는 나도 참 웃기다. 하지만, 내가 뭘 다 알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보러 다닌 적이 있었던가. 뭘 배우고 공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나에게 신선한 자극과 새로운 시점을 제공할 뭔가를 필요로 하는 것뿐이다. 살던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늘 똑같은 걸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낯선 언어, 사람, 물건, 평소엔 접해본 적 없는 새로운 문화 속에서 저절로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니까. 


천천히 올드타운 시내까지 걸어서 란나민속박물관 안에 있는 팝마켓까지 갔다. 음식도 먹고 공연도 즐기고. 오늘도 뭐 그렇게 행복한 하루였다는 말씀. 




*참고- 2022년 12월 시점의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글 홍아미

여행 에세이스트. 아미가출판사 대표. <제주는 숲과 바다>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미치도록 떠나고 싶어서> <지금, 우리, 남미>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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