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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가 Jun 21. 2023

파란 하늘 아래 수영장에서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살아봤더니 10


12월의 치앙마이가 최고 성수기인 까닭은 역시 날씨 때문인가 보다. 매일매일 이렇게 화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맑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당연하고 진부한 묘사인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몹시, 매우, 진짜, 정말 등등의 부사 백만 개가 생략되어 있음.




이날 아침도 나는 홀로 리스트레토 카페로 향했다. 한 500미터 남짓 걸어가는 길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른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상쾌함이다. 오늘의 라테는 “Masic”. 우유 맛이 진하게 나고, 양이 다소 적었다. 





남편이 좀 일찍 깼는지 커피 한 잔 사다 달라고 주문했다. 집 앞 로스트니욤 카페에서 유자아메리카노(100밧)와 노점상에서 간단한 먹을거리(샌드위치 2개 코코넛푸딩 4개 40밧)를 샀다.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 음식이 기계로 내린 커피 한잔 값보다도 저렴하다니. 이곳의 물가도 참 불평등하다.  



10시 반에는 예약해 둔 요가 수업에 갔다. 숙소에서 걸어서 1분 거리다. 애니 선생님의 목소리와 수업방법이 참 맘에 든다. 코브라 자세 하나를 이처럼 섬세하게 지도해 준 선생님이 없었다. 학생들과 원형을 이루어 힘의 밸런스를 맞춰나가는 시간도 좋았다(물론 선생님의 의도대로 잘 되진 않았다). 한국에도 이런 수업을 하는 요가원이 있다면 좋을 텐데.





한낮에는 역시 침대에서 뒹굴거리기.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금세 배가 고파져서 ‘판다푸드’ 앱으로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첫 주문이라 할인 좀 받으니 100밧도 안 되는 금액으로 둘이서 점심을 시켜 먹을 수 있었다. 배달도 빨랐는데 배달팁은 원래 따로 책정이 안 되는 건지, 무료였다. 오늘부터 배달의민족은 한국이 아니라 태국으로 고쳐 불러야겠다. 




오늘은 수영장에 가기로 한 날이다. 오후 3시쯤 숙소를 나섰다. 뜨거운 여름 날씨에 한국에서 맨날 하던 수영을 못하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풍문으로 치앙마이에 50m 야외풀 수영장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일단 50미터 풀장도 흔치가 않은데, 야외풀장이라고? 게다가 관중석도 있는 경기용 풀장을 일반인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수영인이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을 것이었다. 다만 휴양시설이 아니라 운동시설이기 때문에 비치베드나 매점 등 휴게 공간은 없고 딱 수영만 할 수 있는 공간. 땡볕에 마땅한 그늘도 없다고 했다. 즉 수영 못하는 남편을 데리고 가기엔 좀 부담스러운 곳임에 분명했다. 


그래서 치앙마이 여행카페에 수소문을 해서 같이 갈 여자분 한 명을 구했다. 시간 맞춰 숙소 앞에 와주셔서 같이 택시 타고 출발! 




맨날 25m 동네수영장에서 뺑뺑이만 돌다가 광활한 경기장을 보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물론 나의 속도는 이 경기장에 어울릴 만한 스피드는 아닐 터였지만. 입장료는 60밧(2200원). 시간제한은 딱히 없는 듯했다. 




50m 레인은 정말 오랜만이라 처음엔 좀 힘들긴 했지만(가도 가도 끝에 안 닿는 기분) 참으로 환상적인 수영이었다. 열심히 팔을 휘저으며 물살을 가로지르고 있노라면 어딘가에서 우우웅 비행기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휙 뒤집으면 티 없이 푸른 하늘 위로 지구 어디선가 여행자를 가득 싣고 치앙마이공항을 향해 하강하는 비행기의 배를 볼 수 있었다. 


어서 와요. 


나는 물 위에 둥둥 떠 작게 손을 흔들었다. 분명 창밖에 손바닥을 대고 도착지 풍경을 감상하던 여행자 한 명 정도와는 눈이 마주쳤으리라 믿는다. 나는 밤에 도착해서 안 보였지만, 낮에 도착하는 비행기에서는 분명 이 큰 스타디움이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다. 



쉬엄쉬엄 했지만 최소 10번은 왕복했으니 1km는 족히 헤엄쳤을 터였다. 아, 이 힘들고 상쾌한 기분. 




여행을 하다 보면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세상은 참 넓구나. 하다못해 수영장조차도 이렇게 넓지 않은가.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면 나는 다시 좁아터진 체육센터 수영장에서 앞사람의 발바닥을 보며(혹은 뒷사람에게 발가락 어루만짐을 당하며) 뺑뺑이를 돌 테지만 그럴 때마다 눈부신 태양빛 아래서 유유히 헤엄쳤던 이 탁 트인 수영장을 다시 떠올리며 심호흡을 할 것이다. 





*참고- 2022년 12월 시점의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글 홍아미

여행 에세이스트. 아미가출판사 대표. <제주는 숲과 바다>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미치도록 떠나고 싶어서> <지금, 우리, 남미>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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