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렬 Nov 13. 2018

초국적 거리응원을 위하여


외국인 220만 시대다. 스포츠 경기 거리응원은 꼭 대한민국 경기만 해야 하는가. 다른 나라 경기도 거리응원을 펼치면 어떤가. 외국인 거주 밀집 지역과 외국인관광특구부터 실시하면 사회적으로 가치 있을 것이다. 이미 현장에선 국내 체류외국인들은 자국의 경기든, 다른 나라의 경기든 야외에서 스포츠 경기 중계를 시청하는 실정이니 충분히 시도할만한 사안이다.



사진을 증거로 제출한다. 지난 6월 24일 동두천시 주한 미군 2사단 주둔지인 보산동 외국인관광특구 거리의 저녁 9시경 풍경이다. 편의점 뒷문 벽면에 달린 32인치 정도 크기의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외국인 오십여 명이 테이블에 앉아 ‘2018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잉글랜드 대 파나마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대부분 라틴 아메리카인과 흑인이었는데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미군과 아프리카계 외국인으로 추정된다. 동두천은 60년 전인 1952년부터 주한미군이 주둔하여 자그마치 시 면적의 42%가 미군 공여지인 곳이다. 미군이 가장 많을 때는 2만 명을 넘었다고 하니 2018년 4월 기준 동두천 총인구가 9만6천 명 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인원이다. 현재는 안보 문제로 정확한 정보를 접할 순 없으나 2016년 동두천시 시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략 5천 명가량이 주둔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아울러 동두천시 거주 외국인은 4,931명인데 아프리카계 인구는 632명으로 전체의 14%에 달한다. 특히 나이지리아와 라이베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일례로 보산동에 나이지리아에서 온 선교사가 사역했던 교회Solid Rock Mission Church가 있을 정도다.


아무튼, 월드컵 때문에 모인 건지 원래 일요일 저녁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지 궁금하여 9월 초 일요일 동일한 시간에 찾아갔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열 명 미만이었다. 이로써 지난 6월 이곳의 광경은 케케묵은 스포츠의 가치인 “인류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상징적·정서적 경험 제공” 이른바 초국적 특성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월드컵 중계를 보려 편의점 뒤편에 마련된 A4 용지 아홉 개를 가로세로 세 줄로 맞춘 크기에 불과한 텔레비전 앞으로 모인 외국인들. 이들 가운데 잉글랜드와 파나마 출신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르겠다. 만약 미국 대 나이지리아의 경기였다면 분위기가 어땠을까. 나이지리아 조별리그 경기가 열린 날 이곳의 광경을 놓친 게 너무도 아쉬울 따름이다. 이쯤에서 상반된 사례를 들어본다. 하루 전날인 6월 23일 저녁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동두천 최대상권이자 인구 밀집지역인 송내동 시민평화광장에선 멕시코전 시민응원이 펼쳐졌다. 보산동 편의점 텔레비전의 50배는 족히 넘는 대형 스크린 앞에 모인 수백 명의 자국인들은 일제히 ‘대~한~민~국’을 외쳤다. 왜 이런 즐거움을 꼭 자국인들만 누려야 할까. 외국인들도 큰 화면과 넓은 공간 그리고 인파 속에서 월드컵 경기를 즐기고 싶지 않을까. 보산동 외국인관광특구 거리에는 동두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야외무대가 있다. 이곳에서 관주도로 동두천 거주 외국인을 위한 거리응원 이벤트를 진행했으면 어땠을지 상상을 해봤다.


이러한 고민은 2018자카르타 아시안게임으로도 이어졌다. 동두천시에 아시아계 거주자는 2,607명으로 전체 외국인의 60%를 차지한다. 국적별 인구수를 보면 필리핀 829명, 한국계 중국인 773명, 중국 369명, 네팔 223명, 배트남 222명, 태국 191명 순으로 나타난다. 이 중 동두천시와 스포츠로 특별한 관계를 맺은 국가가 있으니 바로 네팔. 주한 네팔 축구협회는 2011년부터 추석연휴 마지막 날에 동두천시 공설운동장에서 축구대회를 진행한다. 전국 각지에서 거주하는 네팔 이주민들이 한 날 한 시에 모여 경합을 벌인다. 멀리는 거제도 목포에서도 올라올 정도로 규모가 크다. 네팔 이주민들에게 동두천시는 축구의 도시나 다름없으니, 네팔 스포츠 경기 거리응원을 동두천시에서 실시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까. 계속 외국인 거리응원에 대해 상상을 펼치던 중 9월 2일 동두천시 공설운동장에선 아시아 6개국(네팔,미얀마,배트남,인도네시아,태국,한국)과 아프리카 3개국(나이지리아,라이베리아,우간다) 이주민 축구동호회가 참가한 <제4회 동두천시 다문화 국제축구대회>가 열렸다. 대회 현장에 찾아가 안면이 있는 ‘주한 네팔 축구협회’ 부회장인 브로카스 씨를 만났다. 2018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을 동포들과 함께 시청했는지 질문하자 딱히 모이는 것 없이 각자 스마트 폰으로 경기를 봤다고 한다. 한국 방송이나 포털사이트에서 네팔 경기를 볼 수 없기에 페이스북이나 네팔 쪽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했단다. 네팔 경기 길거리 응원 행사가 열린다면 참석할 의향이 있는지 물으니 대부분 평일엔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서 참석하기 힘들고 주말에 한다면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같다는 답을 받았다.


내침 김에 베트남 선수에게도 인터뷰를 시도했다. 아쉽게도 모여서 아시안 게임을 시청한 경우는 없었다. 그렇지만 남자 축구 경기를 생중계로 손쉽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죽비소리 같은 대답을 듣게 됐다. 생중계라는 말에 정신이 번뜩인 것이다. 한국 방송에서 베트남 축구경기를 보는 건 흔치 않다는 현실과 전국 어디에서는 베트남 교민들이 함께 경기를 보며 응원을 했을 거라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각성의 힘으로 인터넷에 베트남 이주민들의 한국 4강전 거리응원을 검색해봤다. 역시나 있었다. 8월 29일 부산 사상구에 소재한 베트남 음식점에서 베트남 교민 50여 명이 모여 음식을 먹으며 응원을 펼쳤다.


이주민의 스포츠 경기 시청은 타국 생활의 문화적응과 커뮤니케이션을 촉진 시킨다. 종국에는 사회의 다양성과 인권 확장에 기여를 한다. 이주민들의 스포츠 시청은 대개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모국 스포츠 경기고 다른 하나는 이주한 국가의 프로스포츠이다. <미국 내 한국 이민자의 스포츠 미디어 이용과 문화적응> 연구에 의하면 재미교포들은 미국에서 한국의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면서 향수병을 달래는 것을 기본으로 국제 경기에서 한국 선수의 활약상을 보며 사회적 자신감을 얻는다. 한편, 미국 스포츠를 시청할 경우 직장 동료들과 친분을 다지고 비즈니스 관계에도 이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거주 외국인의 스포츠 시청에 대한 문헌을 찾지 못해 미국 거주 한국 교민의 연구를 참고했다.


올 6월 <2017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를 펴낸 법무부는 2017년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을 2,180,498명으로 집계했다. 전체 인구 대비 4.2%로 최근 5년 간 연평균 증가율은 8.5%이다. 이와 같은 추이라면 2020년 300만 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5.8%에 달하여 OECD 평균 5.7%를 넘어설 것으로 본다. 다시 서론으로 돌아간다. 스포츠 경기 거리응원은 꼭 대한민국 경기만 해야 하는가. 다른 나라 경기도 거리응원을 펼치면 어떤가. 외국인 거주 밀집 지역과 외국인관광특구부터 실시하면 사회적으로 가치 있을 것이다. 이미 현장에선 국내 체류외국인들은 자국의 경기든, 다른 나라의 경기든 야외에서 스포츠 경기 중계를 시청하는 실정이니 충분히 시도할만한 사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에 죄짓지 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