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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렬 Mar 16. 2024

정신력 강화와 정신력 혹사

카타르 아시안컵 축구 국가대표 논란에 부쳐

운동선수의 정신력은 과대평가받고 운동선수가 받는 스트레스는 과소평가받기 일쑤다. 운동선수를 향한 편견 중 하나가 몸이 튼튼하니 정신도 튼튼할 거라는 생각이다. 프로급 운동선수들은 비운동선수보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훨씬 빨리 닳는다. 근육과 관절이 닳고, 불안과 초조함으로 정신도 닳는 바람에 전문선수들은 대부분 30살도 되기 전에 은퇴한다.


2021년 IOC에서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는 전 세계 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결과 따르면 현역 선수의 33.6%, 전직 선수의 26.4%가 불안과 우울증세를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운동선수가 아닌 사람들인 경우 약 13%가 정신건강 관련 증세를 보인 것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선수들은 늘 이기고 지는 상황에 놓여 하루하루 적잖은 스트레스를 달고 살아간다. 한 번의 승패로 인생의 성패가 갈리기도 한다. 그래서 매번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 체력과 정신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코치나 감독은 심리적으로 선수들을 엄혹하게 담금질한다. 세계 최고 기량을 가진 선수라도 자신의 의지만으로 실력을 전부 쏟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유튜브 인기 카테고리 중 하나인 축구 감독 라커룸 영상들을 보면 안다. 명장으로 불리는 축구 감독들, 심지어 전술 패러다임을 바꾼 축구 혁명가, 그라운드의 철학자로 칭송받는 맨시티 FC 펩 괴디올라도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고함지르고 다그친다. 박지성이 지도자의 길을 가지 않은 이유를 “퍼거슨이나 히딩크처럼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선수를 압박을 해서 개개인이 가진 재능을 100% 끌어낼“ 자신이 없어서라고 말하는 걸 보면 선수들의 정신력 혹사를 조금이나마 가늠하게 된다.

역대 최고 기량을 자랑한 축구 대표팀이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이면서 다시 빠따론 망령이 춤을 췄고,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함과 투혼을 달여서 만든 정신력 강화탕을 너도나도 내놓기 시작했다. 베컴 눈썹을 찢고, 삭발까지 시킨 퍼거슨 감독의 악행이 영웅담처럼 회자되면서 한국 대표팀이 구원받을 길은 선수들 영혼까지 쫙쫙 쥐어짜는 감독의 강림에 달렸다는 기도문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제는 정신력 강화가 처방전으로 나올 때 정신력 혹사 진단서도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팬들도 더 멋진 경기를 볼 수 있다. 역사상 올림픽 최다(23개) 금메달리스트로 수영 황제로 불리는 마이클 펠프스도 올림픽에 나갈 때마다 우울증에 시달렸고 자살충동도 일어났다고 한다. 그는 오랜 시간 전문상담을 받으면서 서서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젊은 선수들에게 “선수들이 몸과 마음을 돌봐야 경기력을 100% 끌어낼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선수들이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처럼 팬들도 선수들의 정신력 강화뿐만 아니라 정신력 혹사도 돌아보면, 경기력만큼 응원력도 100%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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