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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렬 Dec 20. 2018

모두를 위한 스포츠

억만장자가 된다면 가장 먼저 송파구 잠실에 가장 좋은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고 싶을 만큼 스포츠 취약지역에 사는 내가 사회적 스포츠 소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사연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피트니스센터에 가려면 25분을 걸어야 한다. 실내수영장은 30분. 이마저도 공공시설이 아닌 민간시설이다. 공설운동장은 40분. 프로스포츠 경기장은 대중교통으로 50분. 그나마 20분 거리에 시민회관 실내 체육관이 있지만 동호회가 대관을 꽉 잡고 있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시체육회에 쓰는 글이니 모름지기 서울시 사례를 들어야 제격이겠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사는 곳은 경기도에서 최북단, 38선 바로 아래에 위치한 인구 10만의 도시 동두천이다. 게다가 동두천에서도 구석진, 한 시간에 버스가 한 대 다니는 빌라 단지다. 주변에 규모가 큰 비누, 가죽, 시멘트 공장과 폐차장이 있어서 그런지 아시아계 이주노동자가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제15회 유럽축구선수권 대회가 한창이던 2016년 6월의 어느 날. 오후 7시 쯤 가죽공장 뒤편 지름길을 이용해 집으로 걸어가다가 사회적 스포츠 소수의 존재감을 알게 됐다. 가죽공장 후문 쪽 공터에 철물과 석재 잔해가 낭자한 흙바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검정색 고무줄 한 개를 벽에 묶어 만든 네트 사이로 가죽이 다 해져 고무만 남은 축구공을 차며 족구를 하는 것이었다. 위험한 공간에서 호쾌하게 공을 차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아 한참을 바라봤다. 이들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족구, 배구, 농구, 배드민턴이 가능한 시민회관 실내체육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까. 그보다 이용이 가능하기는 할까.


체육정책에서 저소득층, 장애인을 위한 이른바 ‘취약계층 생활체육 지원 프로그램’과 ‘스포츠강좌 이용권’사업은 있으나 소수자를 위한 체육활동 지원 사업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취약계층은 자주 사용되는 용어인 반면 ‘스포츠 소수자’ 또는 ‘스포츠 마이너리티’는 매우 낯선 용어다. 허나 올해 3월 문체부에서 발표한 <2030 스포츠비전 “사람을 위한 스포츠, 건강한 삶의 행복”>을 보곤 기대감이 생겼다. ‘스포츠의 대한 권리보장과 복지개념 정립’이 근간인 스포츠기본법 제정 검토가 주요 추진과제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체육진흥법의 대상이 ‘국민’이라면 스포츠기본법의 대상은 ‘누구나’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스포츠 활동이 가능한 사회를 뜻한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나. 몇 달 전 올라온 ‘2019정부 예산안 사업설명’ 자료를 보면 여전히 ‘국민’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 이것은 체육정책 추진과제를 떠나 사회적 현상에 부응하지 못한 처사다.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촉발된 한반도 종전 선언이 코앞으로 다가온 평화시대에 발맞추어 최근 남북 체육 교류가 정점에 올랐다. 허나 정작 생활체육 정책에선 탈북인을 위한 체육프로그램은 부재한 상황이다. 탈북인의 스포츠 참여율 역시 찾아볼 수 없다. 국내 거주 외국인의 증가도 중요한 사회적 과제인데 이에 대한 체육정책도 빠져있다. 이제 한국은 다민족 사회로 진입한 상태다. 법무부는 2017년 말 국내 체류외국인을 218만 명으로 집계했다. 총 인구 대비 비율이 4.2%로 최근 5년간 증가율은 연평균 8.5%에 이른다. 이대로 추이라면 2020년 300만 명을 돌파하여 전체 인구의 5.8%로 OECD 국가 평균 외국인 비율인 5.7%를 뛰어 넘게 된다.  <2010이주민문화향수 실태조사>에 의하면 여가시간 스포츠 활동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탈북인과 이주민의 스포츠를 통한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 지역 스포츠클럽 리그 참여를 가능케 하는 경로야 말로 통일과 다문화 시대를 준비하는 데 더 없이 좋은 모델이 될 텐데 그러지 못한 형편이니, 아쉬움이 크다. 독일의 경우 "스포츠는 언어가 필요 없기 때문에 이주민은 스포츠클럽을 통해 지역사회 공동체에 쉽게 통합될 수 있다"는 선언으로 30년 년 전부터 ‘모두를 위한 스포츠, 이주민들과의 스포츠(Sport für Alle–Sport mit Aussiedlern)'를 진행하고 있다.


체험의 한계인 까닭에 서울시체육회 웹진에다 경기도 동두천시 사례를 흠씬 두들겼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서울시 사례를 들며 결론을 맺고자 한다. 출범 4회 째를 맞이한 ‘2018서울시민리그’에서 외국인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일례로 서울시민리그 블로그에는 ‘마포구여자축구단’ 출전 선수인 미국에서 온 세라타더슨 씨와 ‘사당 3동 사람들’ 배구팀에서 활약하는 일본 출신의 오자카지 유키 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남자 축구 경우 아예 팀 전원이 중국인들로 구성된 ‘ICNKR FC’가 눈길을 끈다. 간편한 조건만 있으면 누구든 참여가 가능한 리그의 장점이 일군 성과다. 앞으로 다양한 종목에서 여러 국적의 외국인들이 참가하는 대회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일의 이주민 스포츠 정책을 연구한 민두식의 논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위 논문의 제언에서는 국내 이주민 스포츠 정책방안으로 법령 제정과 각 지역 체육회 스포츠클럽에 이주민 회원 수, 이용실태에 따른 인센티브 부여를 제시했다. 아울러 각 지역구 체육회에 이주민 담당 생활체육지도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회적 소수를 위한 스포츠의 일차적 목적은 차별 없는 스포츠이다. 이는 차별 없는 사회의 동의어고 차별로 증식되는 혐오와 폭력의 방지 작업이기도 하다. 스리랑카의 민중지도자인 아리야트네는 “가장 약한 자들을 보살피면 혜택은 그보다 나은 모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스포츠는 결국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스포츠다. 내가 사는 동네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식 족구코트에서 족구를 차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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