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적절 Jun 05. 2017

주니어가 스타트업에서 리쿠르팅을 세 번 겪었다

내가 요즘 애들인줄 알았는데 꼰대였다니 

나는 스타트업에서 미디어를 관리하는 일을 한다. 입사하고 7개월 뒤 미디어 팀장이 되었고 미디어 업무가 점점 많아져서 인사 담당자와 함께 리쿠르팅을 두 번 진행했다. 이력서 정리, 면접, 합격 과정을 다 지켜봤다. 그 전에도 전체 리쿠르팅 과정에 한 번 참여했다. 총 세 번 스타트업의 리쿠르팅을 경험하고, 새로운 멤버와 호흡을 맞추는 일을 해 본 것이다. 물론 기존 멤버들과도 계속 맞춰갔다. 이 과정의 감상을 공유한다. 


대기업 가셔도 될 텐데

이력서를 읽는데 왜 이렇게 잘난 사람들이 지원을 한 것인지 궁금했다. 내가 평가하기 과분한 사람들이 많았다. 대기업에 가도 될 스펙이었다. 다들 대학을 열심히 다니며 대외활동을 하고 인턴을 했다. CV에 틈이 없었다. 휴학을 하거나 방학을 맞은 학생들은 또 그 CV의 한줄을 위해 우리 회사에 지원했다. 혹은 대기업을 겪은 뒤에 실망감에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이게 한국 청년의 현실이구나.

취준생인 친구에게 인턴을 뽑는다고 이야기하자, 인턴 모두 정규직 전환이 조건이야?라고 물었다. 그래서 "일단 그렇긴 한데, 일해봐야 알지. 그 인턴들이 우리 회사가 맘에 안 들 수도 있잖아. 서로 맞춰가는 거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가 "와 진짜 생소한 이야기다. 걍 지원자가 졸라게 회사에 맞추다가 못 맞추면 퇴사 아니야?"라고 말했다. 

회사엔 항상 억지로 맞춰가야하는 걸까?

나도 우리 회사에 와서야 구직자도 회사에게 갑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인사 담당자가 ‘수습기간은 서로 맞춰가는 기간'이라고 처음 말했을 때 나같이 대체가능한 저급 인력에겐 해당없는 얘기라 생각했다. 알바를 하거나 인턴을 할 때에 노동자로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이다(항상 대놓고 돈 주는 걸 아까워했다). 생각해보면 회사는 누군가의 노동력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구직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회사도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철학을 가진 회사가 얼마나 될까?


쪼끄만 여자애가 

나는 사회초년생의 나이다. 그래도 어찌저찌 해서 팀장(이라 쓰고 팀 잡일러)을 맡았다. 문제는 외부에 내가 너무 팀장 안 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외부 미팅을 나갔을 때 내가 담당자인데도 나에게는 명함을 안 주고 심심해서 따라온 남자 멤버에게만 명함을 주는 (아재)도 계셨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보니 리쿠르팅을 진행할 때에도 그게 신경쓰였다. 내가 만만해 보일까봐 걱정됐다. 멤버들도 새 멤버에게 내 나이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심지어 웬만하면 걷지도 말라고 했다! 펭귄처럼 뒤뚱뒤뚱 걸으니까.......). 나는 일할 때에 일부러 덜 웃고 쓸데없는 말을 줄이게 됐다. 

팀 내부에서도 비슷한 일을 종종 겪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멤버였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나에게 공격적이었다. 멤버가 퇴사할 때까지 그 감정적 괴리는 극복하지 못했다. 미디어 업무 인수인계 상황을 물어봤을 때도 '그걸 왜 당신이 물어보나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팀장이니까 업무 인수인계를 다 확인하는 건 당연한데.


아...내가 너무 귀여운 탓인가……?


나는 대학을 다닐 때 학회장이었는데 화를 잘 냈다. 남자후배들에게 좀 잘 해줬더니 내 이름을 부르며 무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와 동갑인 남자동기들에겐 형님거리며 90도로 인사했다. 그래서 나는 얕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여자, 특히 어린 여자에게 부드러운 리더쉽이란 가능한걸까. 


나....꼰대인가....?

난 초반일 수록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문득 '나...꼰대인가?'싶게 참견하고 싶은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거슬리던지. 주변 친구들에게 '요즘 애들'은 그러냐고 물어보기도 했다(나도 발랑까짐으론 어디가서 안 뒤지는데!). 몇 번의 경험 끝에 내가 언제 '꼰대질'하고 싶은지 깨달았다. 바로 합의를 지키지 않을 때다.

예를 들면, 우리 회사는 자유로운 출퇴근이 보장된다. 자유로운 출퇴근은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이걸 보장하기 전에 멤버들의 합의를 위한 소통과 노력이 전제 되어야 한다. 회의가 필요한 일과 아닌 일을 구분하고, 정기적인 회의시간을 정하고, 개인 업무 시간을 멤버들이 존중하는 과정이 있은 후에 가능하다. 나 같은 미디어 관리자는 업무 특성상 커뮤니케이션이 잦아 항상 사무실에서 대기 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크리에이터는 할 일이 정해져있다면 출근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식의 합의가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출퇴근이 가능한 것이다. 


많은 친구들이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이 있기 때문인지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스케줄/단독 행동에 대한 배려를 부탁한다. 사실 많이 당황스럽다. 보통 새로운 멤버를 뽑을 때 10시 출근-7시 퇴근이 가능하고 그 시간 내에 업무를 함께 진행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 몇 시간 바꿔 줄 수 있지, 별 거 아닌데 꼰대처럼 굴지 말자, 하고 넘어갔는데 문제는 내가 일방적으로 배려해주면 다른 멤버들이 공평성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고 기존 멤버들이 합의를 봤던 업무 리듬이 깨진다는 거였다. 새 멤버가 조직에 맞춰가듯 조직도 새 멤버에게 맞춰갈 시간이 필요한데 그 과정을 건너 뛰었기 때문이다. 내가 꼰대질 하는 것 같아서 참았는데 지금은 나의 어줍잖은 배려 때문에 당사자와 조직 모두 불편함을 느꼈다는 점이 후회가 된다. 꼰대질이 아니라 합의를 같이 만들어가는 한 마디를 했어야 하는데. 당시의 나는 대화와, 조언과, 꼰대질을 구분할 역량이 없었던 거다. 


누군가 꼰대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홍준표를 보게 하라


이처럼 '합의'는 새로 온 멤버들과 기존 멤버 사이의 문제 뿐 아니라 기존 멤버 사이에서도 계속 노력해야하는 문제다. 업무 시간 중간에 멤버가 놀거나 떠드는 걸 왜 우리는 거슬려할까? 사람이 업무시간 내내 집중하는 건 불가능하고 리프레시가 필요한 건 당연한데. 그 행위 자체를 거슬려 하는건 꼰대짓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회의가 곧 예정되어있거나, 그 사람의 업무가 마감시간이 매우 가깝거나, 계속 마감을 미뤄왔다면 거슬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감 시간이란 합의를 깨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개인 스케쥴, 개인 행동, 조직과 충분히 맞춰갈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자유를 보장받고 싶다면 조직 모든 구성원의 자유도 침해되지 않게  맞춰가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사회적 예의도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선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청소나 심부름을 한다. 새로운 멤버가 수저를 두거나 물을 따르려 하면 가까이 있는 사람이 하겠다고 못하게 한다. 허례허식을 없애는 문화에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나이 어린 사람이 잡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걸 없어져야하는 문화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나이 어린 사람이 ‘제가 할게요'라고 말하고 어른에게 ‘괜찮아요'라는 말을 들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아무런 동의없이 처음부터 안 하면 어른들이 불편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세대에겐 그게 합의된 사항이기 때문에.


이런 건 좀 그만했으면…….


자유로움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다 

세 번의 리쿠르팅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 자유롭고, 수평적이며, 유연한 조직- 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합의점을 찾아가는 멤버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왔다. 그 합의를 깨면 모두가 불편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싫은 소리를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의사소통은 수평적이어도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과정은 별개 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조직 나름의 경험으로 의사결정 방식도 합의를 보기 때문이다. 자꾸 참견하고, 싫은 소리하는 게 꼰대질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스타트업에도 그 나름의 룰이 있다는 걸 이해해 주기 바란다. 


나는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인데 그게 결코 조직과 그리고 멤버 개인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여러 번의 경험에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빨리 말하면 가볍게 해결될 일이 내버려두면 복잡해진다. 그래서 요즘은 싫은 소리를 많이 하지만……. 난 꼰대가 아니라고 믿어……. 



저는 주니어로 정치 스타트업에 들어와 1년을 일했습니다. 

정치스타트업에서 보낸 1년의 후기는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