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적절 Jul 20. 2017

나는 왜 굳이 정신과에 갔나

버티는 삶은 그만하고 싶었다 

쪽팔려서 말을 못 하겠어

나는 요즘들어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그 걱정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도 못했다. 나 스스로도 그 걱정이 얼마나 허황된 걱정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쪽팔려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괴로워 참다 못해 친구들에게 그 고민을 털어놓으면, 친구들은 세상 얼떨떨한 표정으로 '어.....아예 가능성이 없진 않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하는 걱정 수준은 스펀지에 나오는 망상증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 반응

몇 번의 경험 끝에 내가 사실 고민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몸이 불안하기 때문에 내 불안을 정당화 할 고민할 거리를 끝없이 찾고 있음을 깨달았다(나는 그것을 '걱정 돌려막기'라고 명명했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들은 오히려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씨발 나만의 길을 간다!며 타인의 시선이나 평판도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 그런데 정말 엉뚱하게, 인신매매라든가 화상, 살해를 걱정하며 공포에 휩싸이는 게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걱정을 할 때에 과호흡처럼 숨이 막히거나 손에 피가 삭-빠져나가는 느낌에 시달리면서 이 불안이 정신적인 걱정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신체적인 문제임을 깨달았다.

과호흡이란? 호흡의 깊이와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항진하는 상태. 산소 부족, 이산화탄소, 대사성산증 등에 있어서 호흡중추가 자극을 받아 일어난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나는 이번의 불안이 어디서 왔는지 안다. 한 달 뒤가 데드라인인 일 때문이다. 이 한 달만 버티면 심한 불안은 사라지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수준의 불안만 남을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달 버티는 대신 지금 당장 정신과를 가기로 선택했다.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최대한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불안으로 날려버릴 게 아까웠기 때문이다. 불안을 내 인생 선택의 기준으로 두면서, 비행기를 놓치는 게 무서워서 여행을 못 가는 삶은 그만하고 싶었다. 일어나지 않을 재앙에서 도망치는 인생 대신, 버티는 삶 대신 행복을 쫓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최대한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


왜 '굳이' 정신과를 가냐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도서관에 간 어느날 6시쯤 집을 가려 일어서자 몇 시간 내내 불안과 걱정에 시달렸기 때문에 몸에 힘이 쭉 빠져 있었다. 공부 진도가 엄청 밀려 있었다. 걷기가 힘들었다. 항상 즐겁게 하던 운동도 못한지 몇 주가 지난 상태였다. 정신도 마음도 몸도 다 지쳐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 다음날 바로 정신과에 갔다. 


정신과에 가겠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편하게 먹고, 명상을 하고, 등산을 하고, 상담을 받고, 등등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난 이미 많은 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나는 10년 전 심한 우울증으로 반년 간 정신과를 다닌 이후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을 대단히 경계하고 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걷고, 근력운동을 한다. 유기농 음식을 먹고, 항상 바쁘게 일을 하고 우울한 소설 같은 것은 읽지 않는다. 하지만 최고로 행복하다고 느낀 시기에도 자려고 누울 때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 빨리 뒤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노력으로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노오력으로 안 되는 일도 있다구


여러 가지 검사를 했고, 아직 병명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자율신경계가 항상 위협 상태에 놓인 사람의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른 여러 검사도, 불안함을 겪는 사람의 특징을 보였고 높은 지능 덕에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내 몸-신경이 위협을 받은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마음을 편안히 먹어도 내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던 것이다.


약을 처방받고 몇 주만에 정말 죽은듯이 숙면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기분이 좋았다. 실효성 있는 '도움'을 받고 있다는 확신 때문일까. 또 며칠 뒤에 정신과에 간다. 나는 나아지고 있고, 나아질 것이며, 유쾌해질 것이다. 



그 때도 알았더라면

예전에 극심한 불안을 넘어 공포를 겪을 때에는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힘들었지만 공황장애라든가, 강박증이 뭔지 아예 몰랐기 때문에 혼자 견디기만 했다. 내 인생에서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그저 악몽과 공포로만 흘려버렸다는 것이 너무 아깝다. 진작에 신체와 정신적 불안이 연결되어있음을 알고 병원에 갔다면 좋았을 것이다. 너무 걱정이 많고 겁이 많아서 일상생활에 집중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병원을 한 번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단순히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할 수도 있고, 혹은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슬픔에 젖어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작가의 이전글 주니어가 스타트업에서 리쿠르팅을 세 번 겪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