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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절 Sep 01. 2018

독일인들은 다른가요?

차별도 기회가 있어야 차별이 일어난다 

사촌동생이 독일에서 애들도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하고 그래? 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응, 근데 독일어라 못 알아들어서 좀 나아, 의미없는 소음 같아서, 대략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사촌동생의 질문 아래에 독일이라는 선진국 아이들은 다른가, 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하지만 세계 어딜 가나 애들은 공공장소에서 드러눕고 운답니다).


저는 독일에서 살면서 독일인들이 다르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많은 질문에 독일의 국민 수준이 높을거란 기대가 깔려있지요.

독일도 올해 여름 참 더웠습니다 


국민 수준의 정의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국민 수준'이라는 기준이 있다고 가정하고 얘기하자면 한 나라의 국민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낮은 수준의 행동을 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됩니다. 사회학에 유명한 명제가 있습니다. ’이누이트인이 주변에 없으면 이누이트인과 결혼할 수 없다.’ 사람들이 이누이트인과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이누이트인을 싫어하거나 차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주변에 없기 때문에, 만날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기회opportunity structure는 차별, 네트워크 형성 등을 설명할 때 많이 이용되는 개념입니다. 단순해보이는데 곧잘 잊혀지는 부분입니다.  


왜 독일의 정치인은 한국의 정치인보다 부패를 덜 저지를까요. 더 도덕적이어서? 제 생각엔 부패를 저지를 기회를 안 주기 때문입니다. 많은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고, 또 부패를 저질렀을 때 강력하게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독일은 남녀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임금공개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임금을 공개한다면 고용주가 차별할 기회가 없어질 거라 본 거죠. 임금공개법을 통해 인종에 따른 차별도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 인식에서 독일인이 일본인보다 나을 수 있었던 건 교육면에선 역사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제공하고, 법적으로는 나치를 상징하는 이니셜이나 이름을 금지, 히틀러 자서전을 금지, 홀로코스트 부정 발언 형사처벌, 국가와 국기를 흔드는 행위 등을 허용하지 않는 등 기회를 철저히 차단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면에선 독일이 꽤 괜찮은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일상에서 독일인에게 기대 이상인데, 라고 생각되는 순간들이 있긴 합니다. 제가 머리 위로 손을 번쩍 들어올리면 못 하게 한다던가(하일 히틀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에요), 애들이 ‘그거 성차별적인데', ‘그건 진짜 나쁜 말이다'라는 발언을 할 때요. 이런 것들은 작은 행동이지만 차별적 대화, 나쁜 일이 일어날 기회 자체를 없앱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저는 그래도 여기서 살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젠 저 스스로도 기회를 만들고 기회를 없애려 합니다. 얼마 전에 술집에서 친구의 친구가 이상한 말을 해서 너 인종차별 하는 거야, 라고 하니까 저에게 예쁘면서 그런 말을 왜 하냐고 해서 외모 평가하지 말라고 또 받아쳤어요. 친구의 친구인지라, 제 친구를 기분 나쁘게 할까봐 -안 그래도 몇 없는 친구를 잃을까봐- 걱정도 되었지만 참을 수가 없었어요. 이런 제 행동은 차별을 당할 기회를 줄이는 동시에 사실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를 잃는 행동이죠(알고보니 제 친구의 친구도 아닌데 그 자리에 은근슬쩍 있던 사람이라 제가 그 사람과 실랑이를 하는 걸 보고 다른 사람이 그를 쫓아냈습니다).


최근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명의 친구는 제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꾸었고 한 명은 자기가 백인이라 그런 이야기가 불편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상징적인 일이었습니다.
저는 ‘너 하나가 바꿀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도 나대고 설치며 떠들고 다녔더니, 제 주변 사람들이 생각해본 적 없던 부분에 대해 생각하며 생각이 바뀌는 걸 많이 보았습니다. 물론 상대방의 반응에 실망도 많이 하고 정신적 고통도 많이 받았지만요. 더 사회적 힘을 얻으면 그 때서야 좀 말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생각이 드네요. 또 혼자서나마 평등할 기회를 만들어 가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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