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도 기회가 있어야 차별이 일어난다
사촌동생이 독일에서 애들도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하고 그래? 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응, 근데 독일어라 못 알아들어서 좀 나아, 의미없는 소음 같아서, 대략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사촌동생의 질문 아래에 독일이라는 선진국 아이들은 다른가, 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하지만 세계 어딜 가나 애들은 공공장소에서 드러눕고 운답니다).
저는 독일에서 살면서 독일인들이 다르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많은 질문에 독일의 국민 수준이 높을거란 기대가 깔려있지요.
국민 수준의 정의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국민 수준'이라는 기준이 있다고 가정하고 얘기하자면 한 나라의 국민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낮은 수준의 행동을 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됩니다. 사회학에 유명한 명제가 있습니다. ’이누이트인이 주변에 없으면 이누이트인과 결혼할 수 없다.’ 사람들이 이누이트인과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이누이트인을 싫어하거나 차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주변에 없기 때문에, 만날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기회opportunity structure는 차별, 네트워크 형성 등을 설명할 때 많이 이용되는 개념입니다. 단순해보이는데 곧잘 잊혀지는 부분입니다.
왜 독일의 정치인은 한국의 정치인보다 부패를 덜 저지를까요. 더 도덕적이어서? 제 생각엔 부패를 저지를 기회를 안 주기 때문입니다. 많은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고, 또 부패를 저질렀을 때 강력하게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독일은 남녀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임금공개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임금을 공개한다면 고용주가 차별할 기회가 없어질 거라 본 거죠. 임금공개법을 통해 인종에 따른 차별도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 인식에서 독일인이 일본인보다 나을 수 있었던 건 교육면에선 역사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제공하고, 법적으로는 나치를 상징하는 이니셜이나 이름을 금지, 히틀러 자서전을 금지, 홀로코스트 부정 발언 형사처벌, 국가와 국기를 흔드는 행위 등을 허용하지 않는 등 기회를 철저히 차단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면에선 독일이 꽤 괜찮은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일상에서 독일인에게 기대 이상인데, 라고 생각되는 순간들이 있긴 합니다. 제가 머리 위로 손을 번쩍 들어올리면 못 하게 한다던가(하일 히틀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에요), 애들이 ‘그거 성차별적인데', ‘그건 진짜 나쁜 말이다'라는 발언을 할 때요. 이런 것들은 작은 행동이지만 차별적 대화, 나쁜 일이 일어날 기회 자체를 없앱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저는 그래도 여기서 살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젠 저 스스로도 기회를 만들고 기회를 없애려 합니다. 얼마 전에 술집에서 친구의 친구가 이상한 말을 해서 너 인종차별 하는 거야, 라고 하니까 저에게 예쁘면서 그런 말을 왜 하냐고 해서 외모 평가하지 말라고 또 받아쳤어요. 친구의 친구인지라, 제 친구를 기분 나쁘게 할까봐 -안 그래도 몇 없는 친구를 잃을까봐- 걱정도 되었지만 참을 수가 없었어요. 이런 제 행동은 차별을 당할 기회를 줄이는 동시에 사실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를 잃는 행동이죠(알고보니 제 친구의 친구도 아닌데 그 자리에 은근슬쩍 있던 사람이라 제가 그 사람과 실랑이를 하는 걸 보고 다른 사람이 그를 쫓아냈습니다).
최근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명의 친구는 제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꾸었고 한 명은 자기가 백인이라 그런 이야기가 불편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상징적인 일이었습니다.
저는 ‘너 하나가 바꿀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도 나대고 설치며 떠들고 다녔더니, 제 주변 사람들이 생각해본 적 없던 부분에 대해 생각하며 생각이 바뀌는 걸 많이 보았습니다. 물론 상대방의 반응에 실망도 많이 하고 정신적 고통도 많이 받았지만요. 더 사회적 힘을 얻으면 그 때서야 좀 말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생각이 드네요. 또 혼자서나마 평등할 기회를 만들어 가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