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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절 Sep 02. 2018

[영화]그녀HER, 탈감정사회 속의 사랑

우리는 사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면 사랑에 빠지지 못한다 


탈감정사회   

먼저 내가 탈감정이란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탈감정 사회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가짜 진정성으로 가득찬 사회이다. 진정한 감정보다는 신오웰적, 기계적, 석화적으로 '죽은' 추상화된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다.  

정수남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후연구원님의 글을 인용하자면 이러하다.


오늘날 우리는 진정한 감정을 TV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진정한 아빠는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진정한 남자는 <진짜 사나이>에서, 진정한 사위는 <백년손님-자기야>에서, 진정성을 품은 인물은 <무릎팍 도사>나 <힐링캠프>에서나 만나볼 수 있다. TV 밖에서 진정성이 인정받는 시대는 흘러간 지 오래다. 진정성이 불가능한 시대에 진정성은 이제 문화산업을 통해 대량으로 유통되고 소비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진정성의 결핍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과잉된 진정성, 즉 '진정성 피로'를 경험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탈감정주의는 감정의 혼란을 피하고 사회가 기계처럼 순조롭게 움직이게 하기 위한 체계이다. 우리의 감정은 맥도날드화되고 미디어 따위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우리는 조작된 감정을 진짜 감정이라고 배우고 따른다. 그런 사회가 순조롭고 갈등이 부재하니까.   

우리 사회 속에서 사랑이란 것 역시 탈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에서 배운대로 사랑을 한다면 설렘이란 감정을 느껴야하고, 옆에 있어야하고, 서로에게 헌신해야하고, 조건을 따져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사랑이란 감정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라로슈푸코가 말했듯이 우리는 사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면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os와의 사랑에서의 진정성 

그런 탈감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os와의 사랑이 진정성의 결여로 문제가 될까? 이미 사람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감정이 아닌 만들어진 감정을 소비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필해주는 존재이다. 그의 편지는 감동적이고 로맨틱하지만 사실 그 편지를 보내는 주체가 쓴 편지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편지들은 사람이 '부던히 느껴야할' 감정이란 것을 공급해주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탈감정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과 어떤 감정을 소비해야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감정을 인위적으로나마 소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사람이 감정을 직접적으로 만들어주는 편지 대필은 극단적인 예로 보일 수 있겠으나, 현대 사회의 가짜 진정성을 솔직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성을 어필하기보다 사람에게 호감을 얻는 방법론적인 책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그런 특징들을 결합해낸 os가 주는 정신적 만족과 인간이 주는 정신적 만족에서 차이가 존재할지, 그리고 os와의 사랑 혹은 인격적 관계를 비난하는 게 타당할지 의문이다. 어떤 경로든 정신적인 만족을 얻으면 되는 사회 아닌가.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진정성이 결여된 사회는 기계화되고 냉소주의에 빠진다. 진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스테판G메스트로비치는 집합적 흥분, 질적인 현장조사, 대화, 카리타스 등을 제시한다. 그 외에 다른 사회학자들은 맥도날드화된 가게가 아닌 동네 가게 방문하기 식의 대안을 내놓는다. 그런 시도들의 핵심은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어도 사람이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해 다른 사람과 부딪치는 것에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테오도르는 헤어진 아내 캐서린에게 편지를 쓴다. 감독이 이 장면을 넣은 이유는 진정한 감정이란건 결국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사랑이 거짓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사회에는, 특히나 영화의 배경이 된 사회에서는 이미 인위적인 감정이 넘쳐나는데 사만다의 감정을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인위적이고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감정들이 부유하는 사회에 나는 반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캐서린은 말한다. "넌 낙천적이고 행복한 아내를 원했다",고. os와의 관계가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인간에 의해 프로그램되었고, 인간 친화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런 관계가 달콤하고 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엔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닐까. 


영화 내내 OS와 테오도르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보고 공감했으나 나의 결론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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