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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오닐 Jan 31. 2022

별의 목소리 ほしのこえ (2002)

영화 ‘별의 목소리’ (감독: 신카이 마코토)

8.6광년의, 그들 사이에 놓인 것이 거리인지 시간인지 알기 어려워진 때로부터 미카코와 노보루는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여기에 있어.”




우주라는 어둡고 차갑고 끝없이 넓은 바다. 지구는 그 깊은 물 속 어딘가에 부유하는 모래 알갱이 같다. 우리는 그 모래 위에 파리 같은 목숨을 얹어서 살아간다. 끝없이 조류에 떠다니고 파도에 휩쓸리며 의도해본 적 없는 여행을 하는 셈이다. 우리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15살의 미카코와 노보루. 그들의 하늘 위에는 UN의 우주 전함이 구름보다 거대한 몸을 끌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무도 증명한 적은 없지만 이 우주에 또다른 지적인 생명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언제나 있었고, 두 사람의 시대에 그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지구인이 ‘타르시아인’이라고 부르는 그 지적인 종족은, 탐사에 나섰던 지구인 무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탐사대는 그들에게 전멸당한 것이다. 그렇게 지적인 생명체를 찾아내는 일은 호기심으로 나서기엔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 지구인이 새로 터득한 ‘지식’으로 되었다. 이제 인류의 목적은, 스스로의 존재를 그들에게 알리고 만 ‘타르시아인’에 맞서 지구를 지켜내는 것이다.


화성에 정착했던 타르시아인을 몰아내고 그들의 도시를 유적으로 만들어버린 지구인의 시대에 걸맞지 않게, 미카코와 노보루는 자전거로 학교를 오가고, 비가 오면 우산을 함께 받친다. 때로는 비가 너무 많이 온다는 것을 핑계로 오래된 버스 정류장의 지붕 밑에 들어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미카코와 노보루는, 서로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란 것은 아마도, 인류가 불을 처음 발견했을 때에도 지금과 같은 모양이었을 것이다. 마음이란, 최첨단의 시대에도 여전히 단단한 낡은 자물쇠 같은 것이다.


함께 있을 때 그들의 관심사는 ‘우리가 과연 같은 고등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뿐이었다. 언젠가 노보루는 하늘 위에 떠있는 우주 전함을 보고 미카코에게 물었다. 혹시 우주 전함에 관심이 있느냐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소년소녀의, 그만한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날 미카코카 예고 없이 UN 우주 전함의 파일럿으로 선발되고, 이제 곧 우주로 떠나게 될 미카코와 지상에 남게 될 노보루는 휴대폰 이메일 서비스를 활용해 서로 연락하기로 한다.


타르시아인을 찾는 임무를 띠고 미카코의 우주 함대가 지구로부터 멀리 가면 갈수록, 그곳에서 보낸 메시지가 노보루의 휴대폰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늘어만 갔다. 그렇게  년이 흘러 명왕성 부근에 도착한 미카코. 그녀는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타르시아인이 미카코의 함대를 습격하는 일이 발생하고, 공격을 피해 함대는 급히 워프를 통과하며 1광년의 거리를 후퇴한다. 이로써 미카코와 노보루의 시간은 1년이 어긋나버리고 만다. 고작   전에 미카코의 손을 떠난 메시지가, 1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노보루의 손에 가닿게 된 것이다. 1광년을 건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 함대는, 어쩌면 다시 돌아올 길이 없을지도 모르는 워프를 통과하며 8.6광년의 시간을 건너 시리우스 성계에 도착한다. 미카코와 노보루 사이의 시간은 이제 8년의 엇갈림이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들은, 우주와 지상으로 갈라진 연인 같아.”


미카코가 8.6광년의 시간을 건너갔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은, 그녀가 워프를 통과하기 전에 보낸 메시지가 1년 뒤 노보루의 휴대폰에 전송되었을 때였다. 빛의 속도로 8.6광년을 건너뛴 미카코에게는 단 몇 분 전의 일이, 노보루에게는 이제 8년의 시간을 견뎌야 전해지는 소식이 된 것이다.


미카코가 발견한 시리우스 성계의 4행성 ‘아가르타 지구와 닮은 곳이. 그곳에는 사슴이 뛰는 초원과 새가  위를 비행하 바다가 있었다. 하지만 미카코는 여전히 노보루가 그리울 뿐이었다. 노보루를 좋아하는  마음은, 미카코에겐 어제와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아가르타는 지구와 닮은 행성이었지만 그곳엔 노보루가, 노보루와 보낸 시간과 향기가 없었다. 그곳에서 미카코는 영영 닿지 않을지도 모를 메시지를 노보루에게 보낸다. 여름, 비에 젖은 아스팔트의 냄새와 방과후의 너그러운 공기, 한밤중 편의점에서의 평화 같은 것들과, 그리고 노보루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서. 전달할  없는 미카코의 마음은 그리움에 눈이  것만 같았다.


 무렵 지상에서는 24살의 노보루가 마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 뉴스에서는 8  명왕성 부근에서 있었던 우주 함대와 타르시아인 사이의 전투 이후 아직도 소식이 전무한 함대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한켠에는 우주 전함의 파일럿이 되는 데에 성공한 노보루의 제복이 걸려있다. 그리고 그때, 8년의 시간을 건너온 미카코의 메시지가 노보루의 손에 도착한다.


“24살이 된 노보루 군! 안녕, 난 15살의 미카코야. 있지, 난 지금도 노보루가, 너무 너무 좋아. ……”


미카코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는  2줄만이 전송되었지만, 노보루에겐 그가 견뎌온 8년의 시간에 대해 충분한 갚음이 되었다. 지상과 우주로 갈라진  세대의 연인, 미카코와 노보루는 전할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거대한 엇갈림 속에서  한가지를 서로에게 끊임없이 전달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건 바로 서로를 향한 영원한 마음이었다. 빛의 속도로 8년을 가야 닿을  있는 거리는, 미카코와 노보루에게는 영원과도 같았을 것이다.  영원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건너온 그들의 마음은 그동안 주고받은 어떤 메시지보다 또렷하게 들리는  같다.


“나는, 여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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