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니 타키타니' (감독: 이치가와 준)
타키타니 쇼자부로의 아들 토니 타키타니. 그의 이름은, 자신이 태어난지 삼 일만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일로 아버지를 위로하던 미군 토니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그 군인은, 앞으로는 미국의 세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였으므로, 미국인이 세계사의 앞날을 그렇게 예상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인정됐던 것이다.
토니는 그림을 그렸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목소리와 억양, 결이 모두 다른 것처럼 토니가 그리는 그림도 누구나의 것과는 다른 데가 있었다. 토니가 화병에 꽂힌 꽃을 그리면 그 꽃의 아주 세밀한 모사가 종이 속에 담겼다. 그의 그림은 사진을 찍은 것처럼 정확하고 치밀한 데가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그가 그린 꽃나무의 잎에는 어딘가 죽은 나무 같다는 인상이 짙게 묻어 있었다. 나무를 그리면 죽은 나무, 사람을 그리면 마네킨, 또는 시체 같아지는 것이 토니가 그리는 그림의 특징이었다.
그림에 생명력이 있고 없고 하는 문제가 토니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눈 앞에 있는 것을 종이 위에 옮기는 데에 열중하였을 뿐이다. 생명력이 없다느니, 차갑다느니, 고독하느니 하는 식의 느낌은 그가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찌꺼기처럼 생겨난 것일 뿐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 이외에 토니가 열중하는 것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늘 같은 시각에 회색 츄리닝 바지에 흰 운동화 차림으로 달리기를 했고, 들어와서는 오이와 양배추에 소금을 약간 친 샐러드로 아침을 먹었다. 여름엔 시원한 감으로 만들어진 옷을, 겨울에는 두꺼운 셔츠와 그 위에 스웨터를 한 장 입을 뿐이었다. 생활을 위해 필요한 행위들을 하고 나면 그는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아 펜과 페인트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렸다. 대학에서 훈련을 받으며 그는 적어도 그의 지역에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기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기계에는 그림에 담아야 할 생명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적절한 주제였고, 그 작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도 적지 않았다.
그는 혼자였다.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헤어지고 없었다. 자본이 어떻고, 세계화가 어떻고 하는 문제로 한창 시끄럽던 캠퍼스를 거쳐가면서도 그는 그런 대화에 끼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문제들이 도대체 어디서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특유의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 몰두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재즈 클럽에서 트럼본을 부는 아버지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났지만 그 사이가 그렇게 끈끈하거나 다정한 것은 아니었다. 쇼자부로는 아버지로서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토니는 아들로서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자리가, 어디 버스 정류장의 기다리는 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필요한 때에 필요한 시간 만큼을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에게 혼자 지내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어릴 적에는 가정부가 청소와 끼니를 도와주었지만, 그 나머지 시간은 모두 혼자였다. 놀 때도 혼자 놀았다. 그렇다고 해서 토니가 고독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토니는 분명 고독했고, 외로웠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처럼 고독 속에서 지냈을 뿐이다. 그는 고독이 마치 감옥과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감옥인 것을 안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감옥을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토니는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토니는 어느 소설 속 문제아처럼 사람들을 일부러 피하거나, 남들과 말싸움을 일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외로울 뿐이었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열중했으며 단조롭지만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며 자신의 삶을 고양시키는 사람일 뿐이었다. 에이코를 만난 것은 토니의 반복적이고 손에 잡히는 생활 속에 한 가지 예측할 수 없는 변수이자, 그의 외로움을 걷어내는 빛을 만난 것과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옷을 입은 모습이 꼭 날개를 단 것 같고, 마치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에이코를 그는 사랑했다. 그리고 점점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외로움이라는 것이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이 아니라는 사실로부터 그는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고독이라는 출구 달린 방에서 나온 사람은, 언제든 다시 그 문을 열고 고독이라는 방에 갇힐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에이코를 만난 직후 알 수 있었다. 그림자를 치우기 위해서는 빛을 비추는 방법도 있었지만, 더 진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도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에이코와 결혼하고 나서 토니의 삶은, 고독으로 돌아갈 것이 두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달리기를 하고, 양배추와 오이를 섞은 샐러드로 아침을 먹는 것은 같았지만 식탁에 앉은 그의 앞에는 아름다운 에이코가 눈부시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신만의 방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 외로움에 대항하는 좋은 방법이 못 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능한 주부였고, 아름다웠던 에이코에게는 한 가지 벽이 있었다. 그건 옷을 많이 산다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많이.
토니의 수입으로 그녀의 옷 사는 습관을 감당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처음에는 옷장을 추가로 구입하고, 나중에는 옷방을 만들기 위해 집을 수리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에이코의 옷장에는 700벌도 넘는 원피스며 재킷, 바지와 치마, 그리고 신발들이 가득 들어찼다. 그 중 에이코가 실제로 입은 옷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옷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에이코는 옷을 보면, 그저 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도대체 참을 수가 없었다. 토니는, 그래도 괜찮았다. ‘아내가 옷을 너무 많이 산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그것을 말리거나, 그것이 문제라거나 하는 식의 복잡한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토니는 아내에게 옷 사는 것을 줄이면 어떨까, 하고 말했다. 에이코는 순간 얼굴에 표정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곧 그의 말에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토니와 결혼하기 전에 오래 만난 연인이 있었지만, 지금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에이코는 토니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비가 오던 날, 에이코는 토니의 말을 생각하며 최근에 샀던 원피스와 재킷을 반품하러 매장에 다녀왔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오는 길에 신호를 기다리다가 떠오른 반품한 옷의 촉감이며 색깔에 대한 갈증을 이기지 못 하고 매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길에서 에이코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고 만다. 토니는, 그가 두려워했던 대로 다시 고독이라는 방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히사코에게 약 일주일 치의 명품 옷이 생긴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히사코는 대학을 졸업하였으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트타임으로 겨우 먹고 살고 있었으니, 명품 옷을 사는 것은 그녀의 수입에서 보면 지나친 사치였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아내가 죽고 꽤 시간이 흘러도 토니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다시 고독이라는 감옥에 갇혀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직 자신이 고독에 빠지지 않았다는 증거로 삼기 위해 토니는 아내와 체형이 비슷하고 발 크기까지도 닮은 여성을 가사 도우미로 고용하였는데, 그게 히사코였다.
처음, 죽은 아내가 입던 옷을 유니폼처럼 입어달라던 토니의 말은 히사코를 경계하게 만들었지만, 그녀가 보기에 토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를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토니 같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 이런 부탁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부탁을 수락하고 에이코의 옷방에 들어가 옷을 입어보던 그녀는 그만 울고 말았다. 방에서 에이코의 귀신이 나타났다거나, 에이코의 옷에서 그녀의 슬픔이 느껴져서라든가 하는 소설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에이코가 주저 앉아 운 것은, ‘그렇게 많은 예쁜 옷을 골라 입어본 일이 처음이어서’ 라는 것이 그녀 스스로 내린 풀이였다.
토니는 히사코에게 일주일 치 출근할 때 입을 옷을 가져가게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전화를 걸어 이번 일은 없던 것으로 해달라며 양해를 구한다. 모든 계약은 취소된 것이다. 그녀가 가져간 옷들은 그냥 가지면 된다고 토니는 말했다. 토니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 덕에 다시 레스토랑으로 출근하는 에이코의 옷차림이 명품으로 꾸며졌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저마다 에이코에게 어디서 그런 좋은 옷이 났느냐며 부러움의 말들을 던졌지만, 그녀는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었다. ‘설명하기 힘들어.’ 이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설명이었다. 그녀는 토니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히사코는, 토니의 죽은 아내가 사놓고 입어보지 않은 옷을 걸친 채 그의 비밀을 간직하기로 했다.
레스토랑에서 히사코와 함께 일하는 나이 지긋한 동료가 지나가던 그녀에게 말을 건다.
“장갑이 생겼는데, 하나 줄게. 보라색이랑 노란색 중에 어떤게 좋아?”
“저, 아무거나 괜찮아요.”
“그래도 골라봐. 참, 보라색은 손가락이 엄지에 하나만 나 있어. 좀 특이해.”
“어, 정말 괜찮은데. 아무거나 주세요.”
“그래도 골라봐.”
“저 정말 괜찮아요. 안 주셔도 될 정도예요.”
“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거야?”
이렇게 많은 예쁜 옷을 입는 것이 처음이라 눈물이 난다던 히사코가 아니었나. 토니는 아내의 옷을, 결국 헌옷상에게 팔아서 치워버렸다. 텅 빈 방에 그는 혼자 누워 웅크리고 있었다. 슬프지도 않았고 눈물도 나지 않았다. 고독은 분명 감옥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외로움은 텅 빈 옷방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