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깊은 곳에 집을 한 채 얻었다. 해발 700m의 고지대라, 산의 능선과 능선 사이에 언제나 구름이 수염처럼 걸려 있다. 뿌연 날씨가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은 맑아졌다 흐려졌다 한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잘 닦은 유리처럼 맑은 밤하늘을 만나는 수가 있다. 그런 날에는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어딘가 엄청나게 먼 곳으로부터 지난한 시간을 통과해 온 빛들이다.
그렇게 별들을 보고 있으면, 거꾸로 저 별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쪽에서 보고 있는 빛은 아마도 내가 살기 훨씬 이전에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 지금 출발한 별빛은 언제쯤 저쪽에 닿게 될까. 그땐 누가 이 빛을 보고 있을까.
리마 프로젝트는 지구 바깥에 있을지도 모를 지적인 생명체를 찾기 위해 탐사를 떠나는 우주 계획이다. 클리포드 맥브라이드 박사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직접 여정길에 오른다. 그는 이미 달과 화성에 유인 기지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킨 인류에게, 지구와 그 인근은 너무 좁은 무대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새로운 자리를 찾기 위해 태양계 너머의 지적인 생명체를 찾는 일은 그의 영원한 꿈이다.
수천만, 수억 년 전의 별빛이 끝내는 우리에게 닿은 것처럼, 박사는 확신에 차 있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빛은 결국 닿을 것이었다. 지적인 생명체의 존재는 한계 투성이인 인간이 찾기에 역부족일 뿐이지, 이미 수학적으로는 그 확실성이 증명되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는 찾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는 외로웠던 것이다. 그의 삶에는 아내도, 아들도 큰 의미가 없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우주 비행사의 꿈을 키우던 아들을 두고 맥브라이드 박사가 떠난지 십수년. 마침내 해왕성에 정착해 태양계 너머의 이웃을 찾던 리마로부터 불길한 소식이 전해진다. 리마 우주선이 기폭제가 되어 지구에 폭풍처럼 불어오는 과전압의 에너지. 우주 사령부는 맥브라이드 박사가 긴 여행 끝에 심리적 혼란에 빠져 이런 일들을 벌이고 있다고 판단하고, 박사의 아들 로이 맥브라이드 소령을 소환한다. 그에게 떨어진 임무는, 화성에 가서 해왕성에 있는 아버지에게 귀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화성에 유인 기지를 세울 정도로 과학이 발달한 시기에, 미치광이 과학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우주 사령부의 태도는 자못 어색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화성 기지의 관계자들은 로이의 임무를 중단 시키고, 아버지에게 보낼 메시지를 읽던 중 눈물을 흘린 로이에게 사적인 감정이 드러났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대며 그를 지구로 돌려 보내려 한다. 사실은 맥브라이드 박사로부터 회신을 받은 사령부가 그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가 보낸 회신 속에는, 동료 대원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없다는 것이 확실해진 지적인 생명체를 찾는 일에 집착하는 괴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이는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 되어, 해왕성으로 향하는 탐사선에 몸을 던진다. 발사 직전의 로켓으로 진입하는 위험까지 무릅쓰고 그가 해왕성을 향해 떠나려는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아버지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사령부는 무단 침입한 로이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승무원들은 적대 의사는 없다는 로이의 말은 무시한 채 그를 공격하려다 모두 우주선이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모두 목숨을 잃고 만다. 로이는 자기 자신 또한 아버지와 같은 괴물이 된 것 같다.
로이는 리마를 향해 가면서 지구에서의 일을, 우주 안테나에서 일하던 때를 생각한다. 집에는 아내가 있었지만 그는 일을 사랑했다. 일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아내를 공기처럼 여겼고, 결국 기다림에 지친 아내는 그를 떠나고 말았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의 심장박동수는 언제나 낮은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었다. 하지만 로이는 직장에서도 껍데기 같은 존재였다. 의례적인 인사, 웃음, 친근함의 표시들. 로이는 그것이 의례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의 동료들도 그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세상은 그렇게 사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생을 바쳐 헌신하고 있는 임무는 무엇인가. 우주 안테나는 왜 존재하는가. 태양계 너머의 지적인 생명체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기 위함인 것일까?
형제를 늘 곁에 두고도 인류는 그들 자신을 닮은 지적인 생명체, 그러나 그들이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미지의 생명체를 찾고자 했다. 인류의 설 자리를 찾기 위해서? 지구, 달, 화성으로도 모자라 다른 은하계를 넘봐야 할 정도로 인류는 팽창했던 것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외로웠을 뿐이다. 바다처럼 깊고 어두운 우주에 고뇌를 나눌 데 없는 지적인 생명체로서 인류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진 것이다.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홀로 남은 우주선에서, 로이는 아내의 얼굴을 떠올린다. 지구의 햇살을 그리워 한다. 지적인 생명체는 바로 곁에 있었으나, 왜 그 진실을 외면하고 없는 것을 찾아 헤맸던 것일까. 로이와 맥브라이드 박사는 서로 닮은 데가 있었다.
로이는 리마를 폭발 시키고, 어쩌면 다시 돌아가지 못 할 지구를 향해 우주선을 돌린다. 모든 것이 두렵다. 우리의 마음은 이 우주처럼 어둡고 서늘하고 외롭다. 없는 것을 찾아 떠나려면, 저 공허를 향해 응시하는 일을, 지칠 줄도 모르고 계속해야 한다. 다시 돌아가면, 정말 소중한 것들에 집중 하리라. 아침 햇살 아래서 잔에 담긴 커피를 기뻐하고, 그를 향해 문 밖에서 걸어 오는 사랑하는 이를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하리라.
한 걸음 옆에 내 말을 들어주고 대답해줄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는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의 장막 같은 우주 너머를 향해 소리친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되돌아 오지 않는다. 외로움의 정체, 그것은 이 우주 같은 마음 속에서, 잃기 위해 길을 잃어버린 어린 아이 같은 것은 아닐까?
별하늘이 영롱해도, 산 아래는 발 밑이 내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다. 아득하다는 점에서는 저 밤하늘과 다를 바가 없다. 확실한 것, 그것은, 바로 이 까마득함 위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