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유목 일기의 첫 줄을 쓰기까지
한 조각 달이, 어슴푸레하게 파란 저녁 하늘에 가만히 고개를 내민 밤. 나는 드디어 평창에서의 삶을 무언가 형태 있는 것으로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산과 나무가 훤히 보이는 조건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혜택과 같은 일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처음 혼자 살게 되었던, 보증금도 없던 한 칸짜리 방은, 문을 열면 옆 방으로 나 있는 다른 문이 채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벽처럼 버티고 있는 곳이었다. 그 안에도 나와 같은 누군가가 살고 있겠지. 그도 아마 문을 나올 때마다, ‘저 안에도 나와 같은 누군가가 살고 있겠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 년 정도를 지냈던 그 집을 나올 때까지 나는 옆 방에 살고 있었을 ‘나와 같은 누군가’가 그래서 누구인지를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믿기 어렵지만 일 년 동안 한 번도 동시에 문을 열어본 적이 없다. 아마 피했던 것일 수도 있다. 동시에 열었다 한들 나는 아마 소라게처럼 다시 문을 닫고 숨을 죽였을 것이다. 나의 서울 살이에는, 옆집에 살고 있을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내가 누구인가를 들키면 안 될 것 같다는 무언가 규칙 같은 것이 있었다. 조금(정말 아주 조금) 더 넓은 1.5룸으로 이사한 지금도 여전히 창을 열 때, 밤에 걸을 때, 문을 열고 닫을 때, 그리고 씻을 때 아랫집과 옆집에 대해 생각한다.
이제 나무와 산과 하늘에 현관을 맞댄 나는, 문을 열 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맑은 공기, 느긋함, 가까운 자연. 앞으로 풀어낼, 평창에서 살아 좋은 점은 꽤 많지만,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은, ‘별생각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집을 계약하고, 크고 작은 물건들을 집에 들이다 보니 반년이란 시간이 아득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고, 산촌에 들어와 농사는 짓지 못할지언정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은 것이 이 글쓰기였다. 얼마간이 될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누리고 있는 삶이 무언가 형태 있는 것으로 세상에 남아 누군가에게 새로운 계기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살아갈 마련을 하느라 미뤄뒀던 그 일을 이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