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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부침개 Jul 16. 2024

대학교수였던 아빠의 치매






"자꾸 아빠가 깜빡깜빡 하셔.."

"방금 물어보신 것을 또 물어보고 그러시네.."

"핸드폰 조작을 요즘 어려워하신다"

"답답해. 진짜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러시는지"

"기억을 못 하시는건지..일부러 그러시는 건지..."






대학교수였으면 뭐하니..
지금은 나이 든 초기 치매 할아버지인데..






맞다. 


나의 아버지, 우리 아빠는 대학교수로 오랫동안 활동을 하셨다. 

학과장을 맡을 정도로, 아빠는 학교에서 "교수"라는 직함으로 활동을 너무 잘하셨고, 

또 대인관계를 야무지게 하셔서 그런지  학교에서 "학과장" 을 맡으실 정도로 짱짱한, 그런 아빠였다. 


늘 바쁘셨지만, 나에게 "대학교수 아빠" 라는 이미지는 따뜻했다. 


항상 손편지를 적어주셨으며, 

학교에서 학생들과 MT를 가면, 먹지 않고 남은 술과 뜯지도 않는 과자, 안줏거리를 등을 집으로 잘 챙겨오시는 살가운 아빠였다. 



지금 내가 사춘기 딸한테 소리를 지르고, 공부할 때 가요를 듣는 걸 못 마땅하고, 이어폰을 꼽고 부모님 이야기를 잘 안 듣는 행동에 화를 내지만, 나의 아빠는 나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분이셨다. 


내가 어릴 때, 학교 반에서 한 3~4명 가지고 있을법한 아이와 워크맨을 사주셨다.

NOW 1집부터 시리즈로 팝송 모음집 테이프도 사주셨다. 


테이프를 듣는 시절이 지나 CD플레이어가 유행했던 시절에는 "파나소닉 CD플레이어" 를 사주셨다. 아이들은 나를 부러워했고, 나는 으쓱하며 학교생활을 그렇게 착실하게 잘 마칠 수 있었다.

결코 부자가 아닌 우리집이였는데 생각해보면 그 모든것을이 "아빠의 사랑" 이였다. 



그렇게 "대학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나에게는 한없이 멋진 아빠가 "치매 초기증상" 이라는 진단을 받은 건, 불과 몇 달 전이다. 

처음에 엄마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는 조금 멍했다. 



진단을 받기 전에도 가끔 엄마는 내게, 아빠의 이상행동에 대해 푸념을 털어 놓곤했다. 

그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이가 들면, 60대 중반이 넘어가면, 으레 있는 그런 증상들이겠거니 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살뜰히 아빠를 살펴보지 않았다. 





사춘기까진 아닌, 2.5춘기에 도달한 딸과 
치매 초기의 아빠



40대가 되면 회사도 안정적이고 집안도 안정적으로 돌아가면서 멋진 커리어를 펼칠 줄 알았는데 현실은 혼자 중얼거리며 쌍시옷을 날리는 4춘기..아니, 2.5춘기 정도 도달한 딸과 치매 초기 증상의 아빠라는 타이틀이 내 앞에 다가왔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구나.

대학교수였던, 늠름하고 당차고, 어디서나 늘 리더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셨던 아빠가 치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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