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t Mondrian.
네덜란드의 화가.
신조형주의의 창립자.
사실적인 그림에서 출발하여 점차 본질만 남기는 추상화 과정을 거쳤고,
결국 수평과 수직선, 그리고 삼원색만을 사용한 완전한 추상화가 대표작이 됨.
작품을 통해 추구한 바는 "완벽한 균형."
따라서 세계대전을 겪은 그에게 그림은 일종의 "유토피아"였음.
우리 눈에는 "이건 나도 그리겠다" 싶지만, 아래와 같은 그림은 몬드리안에게는 자신의 도피처이자 이상향, 종교에 버금가는 신념이었음.
이렇게만 배우고 가르치던 몬드리안이었는데, 최근 그의 꽃그림을 발견했다. 가장 꽃과 어울리지 않을 법한 미술가였는데, 이렇게 섬서하고 감성적인 꽃 그림을 남겼을 줄이야.
1909년에 그린 아네모네.
물감을 매끄럽게 발라 마치 포스터칼라의 느낌을 주는 몬드리안의 대표작과는 전혀 달리, 울퉁불퉁한 물감의 질감과 붓터치가 살아 있다. 색감도 어찌나 부드러운지!
몬드리안은 특히 국화를 많이 그린 것 같다. 입시 미술 하면서 국화가 정물로 나오는 날은 너무나 싫었던 기억이 있는데, 몬드리안은 어쩜 이렇게 국화를 자주 그렸을까. 당시 많은 화가들처럼 일본에 매료되었던 걸까.
수채화의 투명한 느낌과 번지는 효과가 정말 좋다. 색감이 차분해서 또 좋고. 깨끗하고 맑으면서도 깊이 있고 성숙한 국화의 느낌.
이런 그림 보면 추상화가라고 '그림을 못 그렸나보네' 이런 말은 아무도 못 할 거다.
1921년에 그린 너무도 다르면서도 비슷한 두 작품.
첫 번째는 몬드리안 하면 떠오르는 삼원색의 직사각형이고, 아래는 몬드리안이 이런 그림을 그렸을지 상상도 못했던 장미 그림. 어떻게 한 작가가 동일한 시기에 이렇게 다른 그림을 그렸나 싶었는데, 잘 보면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장미를 단순화시킨 느낌 같은 것... 색을 과하게 쓰지 않는 것도.
아래와 같은 장미 그림을 보면 그간 내가 알던 몬드리안, 이지적이고 논리적이기만 할 것 같은 몬드리안에게 정말 이런 감성이 있었다니 놀랍다. 꽃향기가 날 것 같은 그림. 하긴. 논리 vs. 감성 이런 식의 이분법이 잘못된 거였겠지. 세상에 어디 그렇게 딱 떨어져 구분되는 것이 있던가.
아래는 백합 작품들.
이것은 다알리아.
직선과 명료한 삼원색이 몬드리안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미안하리만큼 다른 면모를 알게 되었다. 정말 몬드리안의 재발견이다.
내가 '전부'라고 알고 있던 사람/작품/사건 뒤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까. 내가 모르지만 좋은 작품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