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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코리 Sep 01. 2020

9월, 브루주아의 푸른 꽃나무

혹 나무 하나하나를 유심히 본 적이 있는지? 

그 색, 모양. 개화 시기, 향기를 관찰하는 것이 삶에 재미를 더한다는 것을 엄마의 정원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알아가고 있다. 일찍부터 봄을 알리는 산수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게 하는 벚꽃, 하얀 십자가가 이파리 위에 내려앉은 듯한 산딸나무, 종소리가 날 것 같은 하얀 방울들이 매달린 떼죽나무, 이른 봄 하얀 팝콘이 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매실나무, 멀리서부터 향기에 웃음 짓게 하는 라일락, 잎이 빨갛게 물드는 화살나무, 겨울에도 새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산사나무와 낙상홍까지. 작은 정원에만 해도 이토록 다채로운 나무들이 각자의 시간에 맞춰 각기 다른, 그러나 하나같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는 사실은 얼마나 경이로운지.

 

자연이란 눈에 보이는 현실도 이토록 아름답지만, 예술이 또 다르게 아름다운 것은 현실 너머를 상상하게 하기 때문일 거다. 


미술가 루이스 부르주아가 만든 나무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무다. 푸른 꽃을 피우는 나무, 인간의 몸과 나무의 가지가 합쳐진 형태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이 나무의 이름은 <좋은 엄마 (The Good Mother)>(1997)라 붙였다. 


The Good Mother, 1999


<좋은 엄마>의 하단은 여자 어른이다. 얼굴부터 위쪽으로는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사람과 무생물의 조합을 작품 초반부터 종종 활용하였는데, 화업 후반부인 1999년의 작품에서도 역시 같은 방식을 사용하였다. 얼굴 대신 자리한 나무 몸통에서는 가지가 뻗어 나와 푸른 꽃을 피우고 있다. 가지 사이로는 새집도 보인다. 풍성한 상부와는 대조적으로 하부는 온전치 못하다. 목발을 짚은 채 다리를 절고 있는 모양새다. (브루주아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상이군인들을 본 이후로 작품에 목발을 자주 등장시켰다.) 

잘 알다시피, 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은 자손 번식을 위해서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고, 거기에 씨가 있다. <좋은 엄마>도 마찬가지다. 자식을 위해 푸른 꽃을 열심히 피워내고 있다. 자신의 다리는 상하고 아플지라도 말이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세계에서 '엄마'는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대표작 <마망>은 테피스트리를 수선하던 자신의 어머니를 실로 집을 만드는 거미에 빗댄 대형 작품이다. 초기작 <인형의 집> 시리즈는 아버지의 외도를 참게 한 가부장제에 갇혀 있던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그 시대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고, 말년에 천으로 만든 책 시리즈 역시 엄마에 대한 회고가 중심 줄거리이다. 

대부분 자식을 위해 참고,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송가'에 가까운 작품들이다.

<좋은 엄마> 역시 '엄마'라는 소재를 다뤘고, 몸에는 부상을 당한 채 얼굴도 없이 푸른 꽃을 피워내고 있는 그녀의 희생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부르주아의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나무에 핀 꽃의 색깔, 푸른 색 때문이다.


현실에서 푸른 꽃을 피우는 나무는 없다. 물론, 수국과 같은 관목은 푸른 꽃을 피우기도 하지만, 루이스 부르주아가 만든 것은 커다란 나무, 즉 교목이다. 교목 중에 푸른 꽃을 피우는 나무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 색깔에 루이스 부르주아의 의도가 있다고 본다. 푸른꽃을 피우는 비현실적인 나무를 만들어서 자신을 희생하여 꽃을 피우는 ‘좋은 엄마’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지. 자신을 먼저 돌보지 않고 예쁜 꽃을 피워낸다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좋은 엄마>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Flower in Forest, 1998


감히 말하자면, 실제로 루이스 부르주아 역시 가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은 아니었다고 보인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그녀 역시 가정에 더 충실하던 때도 있었지만, 남편의 내조와 아이들의 양육 때문에 그림을 향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커리어와 가정이 트레이드오프라는 생각 자체가 매우 고루하긴 하다.) 

나는 가정이 있는 작가로서의 브루주아의 행보가 마음에 든다. 가정이라는 것이 어느 한 사람의 희생해서 건강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그렇다.


노년에 이른 부르주아의 꽃 시리즈가 이를 입증한다. 

90세가 훨씬 넘은 할머니가 되어서 부르주아는 붉은 색 꽃 연작을 그렸다 이 시리즈에서 꽃의 줄기는 다섯 개다. 모든 줄기는 골고루 튼튼하고 탐스럽다. 부르주아는 다섯 송이의 꽃이 각각 먼저 타계한 자신의 남편, 루이스 부르주아 자신, 그리고 세 아들들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가족 구성원 모두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자기 몫의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인 거다. 그 화면은 충만하고 아름답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이야기들 한다.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심지어 첫 번째 책의 한 꼭지에도 저 문장 그대로 썼다. 

그런데 요즘에는, 엄마가 행복하기 위해서 주변의 도움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많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엄마의 행복이 결코 엄마의 '마음 먹기 나름'에만 달리지 않았음을 체감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시간에, 각자의 꽃을 탐스럽게 피워낼 수 있으면 좋겠다. 매일 매일 고민하고 갈등하는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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