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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코리 Aug 05. 2020

8월, 반 고흐의 해바라기

뜨거운 여름, 해바라기의 계절이다. 꽃의 머리가 태양을 따라 각도를 돌린다는 설 때문에 '해바라기'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해바라기는 완전히 개화 하기 전 봉우리일 때만 해를 따라 각도를 튼다. 오해 때문에 붙여진 이름임에도 해를 바란다는 뜻의 '해바라기'라는 이름이 그 꽃과 잘 어울리는 것은 태양이 가장 강렬하게 불타는 8월에 개화하는 꽃인데다, 둥글고 큰 얼굴이 태양의 외형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선명한 노란색 끛잎 역시 황금빛 태양을 닮기도 했고.

해바라기는 일년초다. 말인즉슨, 올해 핀 해바라기를 내년에는 볼 수 없다는 것. 여러해살이 풀은 뿌리가 남아 월동을 하지만, 해바라기는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여름 한 철, 열정적으로 그 노란빛을 뿜다 사라진다.  

짧지만 정열적으로 빛나는 해바라기처럼, 짧은 삶을 그림으로 불태우다 간 화가가 있다.십년간의 화가 생활 동안 200점 이상의 그림을 그린, 스스로를 정열적인 사림이라 일컬었던, 빈센트 반고흐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일 거다.(반 고흐 자신이 그린 카피본 두 점은 각각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과 도쿄의 도고세이지기념손보재팬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 속에는 각도와 형태가 각기 다른 열 다섯 송이의 해바라기가 평범한 화병에 꼽혀 있다. 꽃꽂이를 한 번이라도 시도해본 사람은 알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 정도 크기와 높이의 화병에 열 다섯 송이의 해바라기를 이런 식으로 꽂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중앙의 해바라기 네 송이가 이렇게 꼿꼿하게 서 있을 수는 없다. 화병 주둥이에 기대어 비스듬한 각도가 나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것은 반 고흐가 사물을 그대로 그리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그는 실제 사물을 눈 앞에 두고 그리기를 선호했지만,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던 거다.

반 고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색채였다. 그는 해바라기를 그리면서 "햇빛, 빛, 내가 노란색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유황색, 흐린 레몬, 금빛-그 빛, 노란색은 얼마나 아름다운지!"라고 찬탄했다. (P.50)

노란색을 좋아했던 그는 벽도 노란색으로 변형시켰다. 노란집에서 그린 것은 맞지만, 그 집의 외관만 노란빛이었고, 실내벽은 흰 색이었다. 반 고흐는 의도적으로 노란색의 벽으로 변형시킨 거다. 테이블 보 또한 노란 빛으로 바꾸어 그렸다. 그가 찬탄했던 노란색을 실험하고 싶었던 걸 거다.

반 고흐는 자신의 색채에 꽤 만족했던 것 같다. 자신의 방법처럼 황금색과 꽃의 색조를 녹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한 인간의 모든 에너지와 주의가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던 걸 보면. (p.112)

비슷한 톤의 테이블과 벽을 나누는 것은 푸른 빛의 선이다. 반 고흐는 종종 해바라기 그림에서 노란색과 푸른색을 대조시켰는데, 이는 그가 노랑과 파랑의 보색대비가 여름의 색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믿었던 여름의 색, 황금 구릿빛 밀밭 속 오랜지색과 파란색의 대비가 <해바라기>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재와 색채가 한 데 어우러져 '여름'의 분위기를 한껏 전달하고 있는 거다.


반 고흐는 1888년 아를에 있을 때, 병에 꽂은 해바라기 정물화를 총 네 점 그렸다. 각각 세 송이, 여섯 송이, 열 네송이, 열 다섯 송이의 해바라기이다. (청량감이 돋보이는 해바라기 세 송이는 개인 소장자가 구입한 이래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거의 없고, 여섯 송이의 해바라기는 1920년 부유한 일본인 콜렉터가 구매하면서 오사카 인근 아시야의 개인 저택에 소장되었는데, 1945년 8월 6일 미국의 폭격을 맞아 영원히 유실되었다. 열 네송이의 해바라기와 열 다섯 송이의 해바라기는 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유실될 뻔 하였으나, 미술관 관계자들이 도심에서 떨어진 고성으로 피신시키면서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

모든 해바라기 그림은 앞서 본 그림처럼 노란 색과 푸른 색의 대조를 보이며, 물감을 두껍게 발라 올리는 반 고흐 특유의 기법이 사용되었다. 꽃잎 한장 한장이 타오르는 불꽃어럼 묘사되었고, 이파리의 붓자국은 반 고흐의 힘찬 붓질을 상상하게 한다.



이 해바라기 그림들은 반 고흐의 자화상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를 닮았다. 먼저 해바라기 자체가 갖는 상징이 그렇다. 해를 바란다는 의미를 갖는 해바라기는 미술사에서 충성심을 상징하는 꽃으로 묘사되곤 했다. 반론의 여지 없이, 반 고흐는 그림에 절대적으로 충성한 화가다.

또 하나 눈 여겨 볼 것은 꽃병이다. 당시 꽃그림은 화려한 꽃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반 고흐는 소박하고 단순한 모양의 도기를 활용했다. 화병이기보다는 붓을 보관하기에 더 적합해보이는 이 용기는 아를의 하숙집에 있었던 것이라 추측한다. 소박한 화병은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던 반 고흐의 성향을 보여준다. 초기에 <감자먹는 사람들>이나 <낡은 신발>과 같은 소재를 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앞서 말한 노란 색도 반 고흐에게는 자신을 나타내는 색이었다. 그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자의적으로 색깔을 사용해 분명하게 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p.23) 자의적으로 강조한 노란색을 말하는 것일 테다.

무엇보다 해바라기 시리즈는 반 고흐의 불타는 열정의 산물이다. 반 고흐는 1888년 8월 20일, 세 송이의 해바라기를 시작했다고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이틀 뒤, 주말쯤 4점의 해바라기를 완성할 것이라고 써 보냈다. 다시 말하자면, 커다란 해바라기 그림 네 점을 일주일 만에 끝마쳤다는 말이다. 그가 얼마나 몰입했는지 알 수 있다.(반 고흐는 매일 아침 해기 뜨자마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썼다.) 가히 '열정의 화가 반 고흐'가 그린 '열정의 해바라기'라 할 수 있을 거다.

"화가는 그가 그린 꽃 뒤에 숨어 있어도 사람들이 그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고갱의 말처럼, 반 고흐는 해바라기를 통해 자신을 선명히  나타내고 있다.(p.15) 반 고흐가 "해바라기는 나의 것"이라 했던 것은 해바라기 시리즈가 자신의 분신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었을 거다.


반 고흐는 인생의 마지막에도 해바라기를 그렸다. 마지막 70일 동안 채색화 75점, 드로잉 50점을 남겼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수믾은 그림 중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유작이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반 고흐는 <나무 뿌리>와 <오베르의 농촌 풍경>을 작업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베르의 농촌 풍경> 전경에는 해바라기가 자리한다. 1890년 7월 27일 오후 총에 맞기 직전 반 고흐는 아마 이 그림에 매달리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림의 밀밭 속에서 총상을 입었다.



이틀 뒤인 7월 29일, 반 고흐는 동생 테오가 지키는 가운데 임종을 맞았다. 다음날 열린 장례식에는 반 고흐를 마지막으로 돌봤던 가셰 박사가 해바라기 한 다발을 가지고 가장 먼저 도착했다. 흰색 천으로 덮인 반 고흐의 관 주변에는 반 고흐가 그토록 사랑했던 해바라기, 노란 달리아 등 노란색 꽃들이 가득 놓였다. 한 여름의 때양 볕 아래, 반 고흐의 지인 20여 명은 관을 들고 노란 밀밭을 지나 반 고흐를 땅에 묻었다. 반 고흐의 무덤을 돌보던 가셰 박사와 그 아들은 1950년대까지 매년 그곳에 해바라기를 심었다.


열정을 마치는 것이 자꾸만 두려워지는 시대다. 열정을 쏟았다 부족한 내 능력에 괴롭거나, 열정을 바친 대상(그것이 일이든, 사랑이든)에 배신감을 느끼게 되면 어쩌나. 그러나 과연 관계는 가볍게, 일은 적당히, 내 열정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도록 방어 하며 사는 태도가 영리한 것일까.

Passion fruit이라는 과일이 있다. 어느 과일 주스 가게에는 이를 ‘열정 과일’로 번역했는데, 실제 뜻은 고난 과일에 가깝다. 십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 과일의 단면이 예수의 고난을 연상시킨다 하여 고난의 과일이라는 별명이 붙은 거다. 열정과 고통은 동전의 양면인지도 모른다.

반 고흐는 일평생 자신의 열정을 다 바쳤지만, 평생 경제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의 삶을 실패한 인생이라 평가할 수 있는가?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가? 반 고흐가 생전에 쓴 편지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세차게 저을 수 있을 거다. 반 고흐의 편지에는 사랑하는 대상에 평생 몰두한 자만이 누리는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살아 있다는 생생한 감각은 고통 따위 겁 안 내고 열정을 다 바친 자만이 누리는 특권이라 믿는다. 해바라기의 화가, 반 고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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