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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밖의 비행기

#POTD 8


저녁식사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베란다 창 밖으로 비행기가 한 대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얼른 방으로 가서 카메라를 들고 나와 사진을 찍었다. 보정 프래그램으로 노출을  약간 낮췄더니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집에 앉아서 창 밖으로 비행기가 나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저 비행기는 어떻게 내 눈에 뜨였을까? 초보 조종사가 항로를 잠시 잘 못 들었을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거실에 앉아서 만족스러운 사진을 만들게 되어 기분이 괜찮았다.


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 하지만 사진 촬영을 위해 일부러 먼 곳으로 출사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속해있는 인터넷 사진 동아리에는 계절에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멋진 광경을 담아내는 진사(사진사를 동회인들끼리는 이렇게 부른다.)님들이 여럿이다. 새벽빛이 이쁜 사진을 만들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해가 뜨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런 유명지에는 진사님들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몰리기 때문에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한다. 나에게는 그런 열정이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만의 사진을 만들어 주는 소재는 내 주변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런 곳에 가지 않는다.


3년 전쯤  인터넷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작가인 Steve McCurry의 사진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만의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몰려다니지 말고 "네 코를 따르라"(Follow your nose)고 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이 어디인가를 잠시 생각해 보고 나의 집 주변, 출퇴근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 수상시 언급했던 마틴 스콜시지(Martin Scorsese) 감독도 그런 말을 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학생들이 진로 상담을 요청하면 나는 "짧은 줄에 서라"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원하는 진로방향을 문의하면 절반 이상이 그 당시에 핫(Hot)한 분야를 말한다. 요즘은 AI, 빅데이터가 그런 분야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핫한 분야가 5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마치 사진을 찍기 위해 유명지에 가서 줄을 서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나만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학생들은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알지 못 한 채 긴 줄에 서는 것에 익숙하다. 나를 위한 짧은 줄에 설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집 밖으로 나아가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나의 코를 따라야 한다. 독서, 대화, 여행 등을 통해 느낀 것을 말하고 쓰다 보면 나만의 짧은 줄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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