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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지난 초딩들

#POTD 13

51년 만에 찾아간 초등학교


절친 YJ(초고대 동창)와 함께 고교 동창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다. 사진을 찍느라 결혼식이 끝날 무렵 피로연장으로 내려갔다. 10여 명의 동창이 미리 그곳에서 식사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친구들은 거의 안 보였다. 늦게 그곳에 합석하기가 뻘쭘해서 좀 떨어진 자리에 둘이 앉았다.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K가 우리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에 와서 앉는다. K가 나와 YJ가 다닌 초등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대화 중에 처음 알았다. K가 종이컵에 남아있던 소주를 완샷하고 빈 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는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한 친구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준영아, 이 친구도 M 초등학교 출신이야!”

“아, 그래?”     


새로 합석한 H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중학교도 동창인 것을 알았다. 초중고 동창을 평생 처음 만난 것이다. 환갑이 넘어서야 초중고 동창을 처음 만나다니?     


두 달쯤 지난 후 YJ(초고대 동창), K(초고 동창), H(초중고 동창)를 카톡방에 초대하여 모임을 제안했다. 남산 둘레길을 두 시간 정도 걷고 파전에 막걸리를 함께했다. YJ를 제외한 두 친구는 45년 만에 처음 만났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큰소리로 웃고 떠들 수 있었다. 다시 석 달 후 청계천 어느 노포에서 모임을 가졌고 이때에는 친구들이 두 명 더 늘었다. 6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이가 되어서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동창 여섯 명의 모임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새로 만난 두 친구를 포함해 모두가 초딩으로 돌아간 저녁이었다.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면 초딩이 된다는 것을 말로만 알던 나에게 낯선 기쁨이었다.     


평생 처음 만난 60대 남자들끼리 서로 끌렸던 이유는 뭘까?                


여행작가 이병률의 <끌림>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똑같이 생긴 뭔가를 두 개 산 다음 그중 하나에 마음을 담아서 건네면 된다.' 낯선 사람들도 뭔가를 공유하게 되면 서로 끌린다는 것이다. 하물며 50년 이상 된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뜨문뜨문 가지고 있던 추억에 그들의 퍼즐 조각들을 끼워보니 그 당시 그림이 제법 선명해진다. 그러니 내가 기쁠 수밖에!!     


내가 후렴구만 기억하는 초중고 교가를 완창하는 친구. 학생이 많아서 3부제로 운영되던 교실. 학생들 주소를 조사해서 집이 먼 아이들을 모조리 전학 보냈던 일. 교실이 모자라서 강당에 모여서 바닥에 도화지를 놓고 그림을 그렸다고 주장하는 친구.     


기억이 어렴풋해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담임 선생님 이름 외우기는 내가 보인 필살기였다. 이건 내 기억력이 좋아서가 절대 아니다. 6·25 때 이야기를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말하는 사람은 그 얘기를 어제도 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담임 선생님 이름을 잊을 만하면 머릿속에서 기억을 되새겼다.     


H는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도중에 '내 얘기에 집중해 줘서 정말 고맙다!'라는 말을 다섯 번 정도 반복했다. 7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80세가 넘으신 후로는 옛날이야기를 자주 반복해서 하셨다. 어느 날 내가 참지 못하고 지금 하시는 말씀은 전에도 여러 번 하셨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시며 나에게 따가운 한 방을 날리셨다.     


"내 동창들은 같은 얘기를 아무리 해도 잘 들어주는데 너는 틀려먹었다!"     


H의 말을 듣고 아버지에게 진실(?)을 말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아버지는 손주들이 집에 놀러 오는 날이면 잠시 반가워하시다가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셨다. 공통 화제가 없어서 서로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사진도 배우고 이 삼십 대 사람들과 독서 모임을 하고 인스타도 열심히 한다.     


나보다 20년 이상 젊은 사람들과의 대화는 외국인들을 대할 때만큼이나 신경이 많이 쓰인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그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계속 배워야 한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또 다른 외국어를 배우기가 버거워진다. 모국어가 가장 편하다. 초딩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에는 완전한 모국어가 사용된다. 머릿속 내 생각을 상대방의 언어로 바꿀 필요가 없다.


인생 후반에야 생긴 초딩들의 모임이 은근슬쩍 사라질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 얘기에 온전히 집중해 주는 친구들이 생겨서 기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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