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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크루즈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

#POTD 14

알래스카 유람선에서 본 빙하


결혼 40주년을 맞아 가족 모두(큰아들 부부와 손자, 둘째 아들, 우리 부부)가 7박 8일 동안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두 아들이 아이디어를 냈고 모든 예약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너무나 편한 여행이 되었다. 크루즈 여행의 좋았던 점들은 상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접어두고 그렇지 않았던 것들을 적어본다.     

큰 배는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 가족이 탄 Royal Princess 호는 길이 407m, 너비 38m, 높이 56m의 크기다. 무게는 14만 톤이며 승객 정원은 3,560명, 승무원 1,360명이다. 이렇게 큰 배가 흔들릴까? 그렇다! 그런데 흔들리는 이유가 의외다. 파도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검색해 보니 파도로 인한 흔들림은 그 움직임이 커서 몸이 쉽게 적응해서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배 안의 엔진 소리 때문에 미세하게 흔들린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도 그렇지 않을까? 크고 강해지면 외부 환경보다는 내부의 문제로 흔들린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나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으로부터?

바다가 훤히 보이는 발코니가 있는 객실에서 7박 8일 동안 편하게 지낸 것은 1,300여 명의 승무원들이 배 안에서 열심히 일해 준 결과다. 여행에서 돌아와 한 승무원의 인스타를 우연히 보았다. 그들의 객실은 창문이 없거나 작은 창만 있으며 한국의 고시원보다 훨씬 좁았다. 선원들의 급여는 낮아서 미국 유람선 회사의 경우 필리핀 사람들같이 영어를 사용하며 저임금으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들을 고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크루즈 기간에 본토 발음으로 영어를 하는 승무원을 만나기 어려웠다.     


배에서 내려서도 멀미를?

나는 크루즈 기간에 멀미를 하지 않았지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하던 중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런 현상을 육지멀미라고 한다. 심할 때는 구토와 어지럼증이 며칠 동안 계속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경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배처럼 움직이고 있지만 멀미를 느끼지 못한다. 지구의 움직임에 너무나 익숙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대학 시절 호기심으로 지구의 자전 속도를 계산해 본 적이 있다. 시속 1,500km 정도이며 이는 여객기 속도의 두 배에 달한다.     


크루즈 여행에도 불편함이?

유람선 갑판에서 긴 벤치에 누워 선글라스를 쓰고 책을 보는 장면은 영화에서처럼 멋지지만은 않다. 가끔 어마어마하게 큰 뱃고동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바다에 안개가 조금이라도 깔리면 그 소리는 더 자주 들린다. 침대에 누우면 배의 엔진 소리로 인해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예민한 사람은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알래스카 크루즈는 알래스카를 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알래스카는 미국 본토와 뚝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그런데 지도를 자세히 보니 캐나다 서쪽 끝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뻗어져 있는 영역도 알래스카였다. 이번 크루즈 기간에는 미국 본토 서북쪽 끝에 있는 시애틀에서 출발해서 캐나다의 서쪽 바다에서 1,500km 정도 북쪽으로 올라갔다 돌아왔다. 큰 지도로 보면 캐나다처럼 보이는 이곳도 알래스카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알래스카 킹크랩이 최고다?

알래스카 킹크랩은 한국에서 주로 유통되는 러시아산 킹크랩보다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정해역에서 잡힌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나는 주문진항에서 맛보았던 러시아산 킹크랩에 점수를 더 준다. 미국 사람들은 킹크랩을 요리할 때 몸통은 먹을 것이 없다며 버린다. 주문진항에서는 맛 좋은 볶음밥을 몸통(게딱지)에 담아주었다. 미국 음식은 대체로 짜다. 알래스카에서 맛보았던 킹크랩은 그 정도가 더했다.     


웅장한 빙하?

알래스카 크루즈의 하이라이트는 빙하를 보는 것이다. 눈이 오랫동안 산이나 꽁꽁 언 바다에 쌓이면 얼음이 된다. 이 얼음이 서서히 흘러내리는 것을 빙하라고 한다. 알래스카에는 빙하를 볼 수 있는 해상 국립공원이 있다. 우리는 배 안에 머물면서 먼 산에 있는 빙하를 보았다. 100년 전 사진에 비해 너무나 많이 녹았다. 산 전체를 뒤덮고 있던 빙하가 산 아랫부분에만 남았다. 배 주변에는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들이 떠다녔다. 지구의 더운 날씨를 견디기 힘들어하며 녹아내리는 빙하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번 여름에 크루즈 여행을 포함해서 45일 동안 미국에서 지냈다. 긴 여행에서 돌아오면 서울에서의 일상이 며칠 동안 낯설게 느껴진다. 아파트 현관, 컴퓨터 비밀번호가 잠시 생각나지 않는다. 매일 챙겨 먹던 단백질 보충제는 3일째 기억났다. 미국에서 짜고 기름진 음식을 주로 먹다 보니 학교 구내식당의 7천 원짜리 점심이 유난히 맛있게 느껴진다. 잠시나마 일상이 여행지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런 낯섦이 즐겁다.     


여행을 통해서 멋져 보이는 남들의 삶에도 나와 같은 어려움이 있고 대단치 않은 내 삶도 그들만큼 멋져 보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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