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답안지 확인

#POTD 17

이미지 생성 : ChatGPT


중간고사를 치르고 그다음 주 수업 시간!


 시험 점수 분포와 개인 점수를 공개했다. 개인 점수 공개할 때 학번을 사용하면 학생들이 다른 학생의 점수를 알 수도 있다. 이런 것에 민감한 요즘 학생들을 위해 나는 학번에 핸드폰 번호를 더한 숫자를 개인 식별 아이디로 정했다. 학교 그룹웨어에서 내려받은 엑셀 파일에 학번, 전화번호가 있으니 이렇게 하는 것은 나에게 일도 아니다. 학생들이 덧셈을 마칠 때까지 기다린 다음 개인 성적을 10명씩 10초 정도만 보여준다.      


답안지를 확인하고 싶으면 수업이 끝난 다음 연구실로 오라고 했다. 수업을 마친 후 학생들이 우르르 나에게 몰려들었다. 전체 학생 31명 중 10명 정도가 답안지 확인을 원했다. 이렇게 많은 학생이 시험 성적 확인을 원하던 적이 있었나?     


연구실에 첫 번째 학생이 들어왔고 나머지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학생과 회의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는다. 학생의 이름을 물어보고 내가 31장의 답안지를 하나씩 넘기며 답안지를 찾는다. 이번 시험에서 최고 점수의 답안지에 그의 이름이 보인다. 최고점을 받은 학생이 답안지를 확인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시험은 총 9문제, 각 10점. 그 학생의 점수는 90점 만점에 87점이다. 답안지를 보니 세 문제에서 각각 1점씩 감점되었다. 나는 그가 만족하며 일어설 줄 알았다. 그는 각 문항에서 왜 1점씩 감점이 되었는지를 물었다. 상세하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내 설명을 듣더니 '교수님께서 어떤 기준으로 채점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수긍은 되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건조함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학생들이 한 명씩 들어왔다. 모두가 경직된 얼굴로 감점의 이유를 물었다. 어떤 학생은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것만 정답입니까?’라고 불타는 눈을 하고 묻기도 했다. 학생을 다섯 명쯤 대하고 나니 나의 마음이 점점 방어적으로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답안지를 보면서 살짝 미소를 띤 표정으로 의외의 말을 한다.     


"3번 문제는 점수를 후하게 주셨네요? “     


이 학생은 내가 그 문제를 다시 보고 감점하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했을까?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그럼 점수를 다시 깎을까?’라고 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 웃는 얼굴로 절대로 안 된다고 한다. 그런 대화가 오가면서 방어적이었던 나의 마음은 녹아내렸다. 내가 어느덧 그의 편이 된 것이다.     


내가 학생 때 교수님에게 답안지를 확인하러 갔던 단 한 번의 경험이 기억났다. 내 눈에도 다른 학생들처럼 감점이 많이 된 문제만 보였다. 이 학생은 어떻게 자기가 후한 점수를 받은 문제를 볼 수 있었을까? 그날 내내 그 학생의 한마디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별거 아닐 수 있는 그 말이 왜 이토록 강하게 남았었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협상의 자리에서 상대방을 칭찬하는 것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누구나 아는 단순한 논리이지만 그렇게 말하는 학생은 처음 보았다.     


그만큼 요즘 학생들은 감사의 표현이 서투르다. 아니 나도 그렇다.     

내가 미국에서 과속 티켓을 받아 법원을 찾았을 때가 있었다. 법원 벽에 '당신이 받아야 했을 수많은 티켓을 생각해 보시오'라고 적힌 글이 보였다. 순간 뜨끔 하면서도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손해 본 것만 생각하지 말고 감사의 마음을 먼저 갖자는 것이다.
 
이런 여유 있는 마음이 판사와 이야기할 때 내게 유리하게 작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 학생이 나에게 말했을 때처럼 말이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원하는 지식을 거의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얼마 전 한 AI 전문가는 앞으로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것은 지식보다 사회성이라고 했다. 대학에서도 지식을 전달하는 것 못지않게 사람다움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다음 수업 시간이 되었다. 한 학생이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고 학생들에게 말했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 학생이 어디에 앉아 있는지 알고 있었고 내 말을 어떤 표정으로 듣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학생들을 더 여유 있게 대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서였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머리에 핀 꽂은 쓰레기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