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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펀드매니저

넉 달 전쯤 미경회 모임이 있었다. 미경회는 미* 초등학교와 경*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6명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작년 초에 우연한 기회로 만들어졌으며 나는 이 중 3명의 친구를 여기서 처음 알았다.


우리는 두 달 만에 모여 서울대공원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근처 맛집에 자리를 잡았다. 과천에 사는 인식이의 말로는 대공원 근처에는 가건물을 짓고 식당을 하는 곳이 많으며 이 집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두 시간 정도 걷고 난 후에 친구들과 막걸리를 한잔하니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다. 대화는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으로 시작해서 어느샌가 고등학교로 넘어왔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그 시절 부동산 이야기를 하다가 강남에 땅을 살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아쉽다고 했다. 내가 그 친구의 탄식을 듣고 한 마디를 던졌다.
  

“정수야! 그런 기회는 지금도 쌔고 쌨으니까 옛날얘기만 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해 봐!"
 "그래? 그런 게 뭐가 있는데?"
 "너 비트코인이라고 들어봤니? 지금 100만 원 정도 투자하면 평생 우리 모임 회비는 그걸로 다 내고 나중에는 우리끼리 해외여행도 다닐 수 있을껄?'
 

우리 대화를 듣던 인식이가 3분의 시간을 줄 테니 비트코인에 왜 투자해야 하는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내가 어떻게 설명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최대한 쉽게 말해 주었다. 인식이는 내 말을 듣더니 ‘그럼 100만 원을 줄께 그 돈으로 비트코인을 사주라!’고 했다. ‘네가 직접 사야지!’이라고 내가 말하고 잠시 웃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용석이가 그러지 말고 친구들 전부 나에게 200만 원씩 돈을 모아주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대학교도 같이 다녔던 용석이는 내가 2년 전부터 계속 비트코인의 중요성을 설파했을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던 친구다. 이 친구가 왜 갑자기 돌변했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마치 집에서는 내 말을 안 듣던 아내가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내 편을 드는 것 같았다. 용석이의 말을 받아서 회장인 성진이가 모두 지금 당장 200만 원을 나에게 보내자고 한다. 친구들이 크게 동의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감기로 모임 참석하지 못한 재성이를 제외한 네 명이 저녁 자리에서 나에게 ‘묻지 마 투자’를 한 것이다. 잠시 후 인식이가 집에서 TV를 보고 있던 재성이에게 전화하더니 상황을 10초 만에 설명하고 돈을 보내라고 한다. 재성이는 영문도 모른 채 바로 돈을 보내왔다. 우리는 재성이의 이런 용감하고 무모한 실천력에 놀라며 크게 웃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하루아침에 평생 처음 친구들의 투자금을 받은 펀드 매니저가 되었다. 펀드의 초기금액은 나를 포함한 6명이 200만 원씩 투자한 거금 1,200만 원! 그다음 날 아침 나는 얼떨떨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마음이 바뀌었으면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모두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면서 진심이라고 했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 친구들에게 비트코인에 관한 기초지식을 꾸준히 알려 주기로 했다. 1주일에 한두 번 비트코인 관련 정보를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반응이나 질문이 없으면 너희들은 묻지 마 투자자가 되는 것이라고 겁주듯이 말했다. 그래도 계속 반응이 없었다. 그 다음 부터는 비트코인에 관한 글을 올리지 않았다.
 
 미경회 친구들은 만나서 술을 한잔 걸치면 같은 말을 또 하고 또 하면서 수다쟁이가 된다. 하지만 카톡방에 진지한 글을 올리면 쌩까 버린다. 우리만의 펀드가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4개월쯤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왜 친구들이 댓글을 달지 않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 친구들은 복잡한 것은 알고 싶지 않고 그냥 내 말을 믿어 준 것이다. 아니 나를 믿어 준 것이다     


나는 평생 공대교수로 살았다. 그래서인지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을 믿고 따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이유를 묻고 공감이 되어야 행동으로 옮기는 습관이 어느새 뼛속까지 베어져 있다. 그런 나에게 친구들의 이런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마음에 찐~한 고마움이 느껴진다.     


인생 후반전에 들어서서 나의 말을 무조건 믿어 주는 친구들이 생겨서 든든하다내가 누군가의 말을 요리조리 따지지 않고 믿어 준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결혼한 이후로는 아내 이외에 떠오르는 얼굴이 거의 없다.
 
 다행히 4개월 전에 시작된 우리만의 펀드는 지금까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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