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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야외수업

요즘 학생들은 ‘야외수업’이란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야외수업이란 단어를 모르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나도 그 단어를 알고는 있었지만 경험하지는 못했다.     

32년 전 내가 처음 교수로 임용되고 5월이 되자 야외수업을 하자는 학생들의 소리가 여러 번 들려왔다. 나는 그러자고 하면서 캠퍼스 내 한적한 곳에 있는 잔디밭으로 정해서 알려주었다. 교육은 강의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30명 정도가 둘러앉아 즐거운 시간은 보내고 있었다. 두세 명의 학생들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검은 봉투에서 막걸리를 꺼냈고 모두가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서 한 잔씩 마셨다. 분위기가 좋아졌고 학생들은 나에게 노래하라고 소리쳤다. 나는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를 불렀다. 학생들은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런데 학기 말에 있었던 한 학생의 강의평가가 나를 놀라게 했다.     


"교수님,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실 때 2절은 안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결단코 그 노래의 2절을 부르지 않았다. 2절 가사를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얼마나 지루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강의평가 한 줄에 상처받아서 그다음부터 오랫동안 내 수업에서 야외수업은 사라졌다. 20년쯤 지난 후 나는 우연한 기회로 소형 디지털카메라를 장만했고 출퇴근 길에 장충단공원과 남산 일대의 모습을 계절에 따라 담았다. 어느 가을날 학생들에게 남산에 가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매 학기에 한 번씩 학생들을 데리고 남산에 가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한 학생은 강의평가에 이렇게 적기도 했다.     


강의에서 좋았던 점 : 남산에 가서 단체 사진을 찍었던 것

강의에서 아쉬웠던 점 : 남산에 한 번밖에 가지 않았던 것     


남산 둘레길은 봄에는 벚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화려한 옷을 입는다. 그 안에서의 산책은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무공해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공급해 준다. 졸업생들이 학교에 다시 오면 이렇게 좋은 환경을 자신들이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5년 전쯤 가을에 남산에 가자고 했더니 한 학생이 큰 소리로 '교수님, 날씨가 춥습니다'라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그럼, 수업할까요?'라고 했고 학생들은 대부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나는 학생들이 ‘안 추워요! 남산가요!’라는 말해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날부터 남산에서 단체 사진 찍기는 사라졌다.     


이제 나는 내년 초에 은퇴를 앞두게 되었고 올해가 학생들과 함께 남산에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학생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4월 8일 단톡방에 내일 수업은 남산에서 진행한다고 공지했다. 수강생 전체 단톡방에서 ‘좋아요’ 이모티콘이 한 개 보였을 뿐 다른 반응은 없었다. 40명이나 있는데도 말이다. 다음날이 되어 학생들과 함께 내가 미리 봐둔 곳으로 걸어갔다. 학교에서 남산으로 연결된 산책길에 들어서자 뒤따르는 학생들의 소리가 들렸다.     


'와~ 우리 학교에 이런 곳이 있었어?‘     


남산에 처음 와 보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절반 가까운 학생들의 손이 올라왔다. 내 수업 조교인 박사과정 학생도 남산에 처음 가본다고 했다. 적어도 학교에서 7년을 보낸 학생이 강의실에서 10분 만에 올 수 있는 남산이 처음이라니?      


둘레길에 올라서자 학생들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렸고 강의실에서 볼 수 없었던 활짝 웃는 모습들이 보였다. 캠퍼스에서 무표정으로 걷던 학생들이 나무에 달린 벚꽃들을 보느라 고개를 하늘을 향해 들었다. 단체 사진을 찍고 조별로 자유시간을 가지라고 말한 후 조교와 학교로 돌아왔다. 자연 속에서 조원들끼리 산책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위해 내가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학생들은 대부분 조별로 사진을 찍고 몇 명은 남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연구실에 돌아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남산 수업을 경험한 학생들은 대부분 그날의 추억을 오랫동안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왜 남산 산책을 하지 못했을까? 한두 학생의 반대를 이기지 못했던 나의 방어적 태도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일 야외수업을 계속했더라면 삭막한 도시 생활에서 막힌 골목길을 산책이 주는 치유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더 많은 학생들이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본격적인 AI 시대를 맞이하고 있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든다. 학생들이 지금 공과대학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졸업 후 수년 안에 대부분 쓸모없게 될 것이다. 금방 사라질 전공지식 외에 뭘 가르쳐야 할지를 자주 생각하지만 뾰족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     


AI는 컴퓨터를 통해 적어도 사람의 수만 배의 속도로 지식을 학습한다. 그러니 사람도 책이나 컴퓨터를 통해서만 지식을 얻는다면 AI시대에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AI가 학습하기 어려워하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잠시 후 야외수업에 관련된 한 문장이 떠올랐다.      


“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를 학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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