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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함에서 찾은 새로운 열정

#POTD 19

내가 처음으로 서울 야경 출사를 경험한 것은 5년 전이었다. 사진 동호회 모임에서 동작대교 출사를 야간에 진행했다. 야간에는 빛이 부족하기 때문에 카메라의 셔터를 오래 열어놓는 장노출 기법이 사용된다. 그래서 장노출 시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삼각대가 필요하다. 사진작가의 가르침 대로 10명 정도의 회원들이 삼각대를 설치하고 같은 방향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첫 야간 출사였지만 제법 괜찮은 사진을 몇 장 얻었다. 하지만 나는 야경 사진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인터넷엔 한강을 배경으로 하는 멋진 사진이 셀 수 없이 많았고, 장노출을 위해 삼각대를 사용해야 하는 것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그 이후에는 야경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나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사진가는 ‘아프간 걸(Afghan Girl)’이란 사진으로 잘 알려진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이다. 그는 삼각대나 조명기구의 도움 없이 오로지 카메라로만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가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진을 찍을 때 몰려다니지 말고 자신의 본능을 믿고 혼자만의 길을 찾아다녀라!’이다. 가벼운 차림으로 혼자 다니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 그때부터 나는 사진가들이 몰리는 곳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러다 보니 출퇴근 길에서 내 눈에 보이는 모습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서울 야경촬영을 주제로 한 사진 강좌가 있다는 공지를 한 달 전쯤 보았을 때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포토투어 서울의 밤>이란 타이틀과 그 수업을 진행하는 J 작가에 끌려 이 강좌에 등록했다. 첫날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출사 때는 삼각대 사용에 익숙지 않아서 고생했다. 그다음 주 수업에서 J 작가로부터 비교적 새로운 관점의 사진을 찍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DDP 출사가 오랫동안 무뎌진 나의 사진 세포에 다시 불을 댕겼다. 삼각대를 새로 장만했고 두 번째 수업인 광화문, 서울역 출사에서는 처음보다 비교적 수월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DDP 1
DDP 2


유튜브를 통해서 서울에서 야경을 찍을 수 있는 장소들을 검색해 보았다. 서울 시내에 멋진 야경을 촬영할 수 있는 장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우선 서울역, 광화문을 높은 곳에서 촬영할 수 있는 서울역 옥상정원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정원을 찾아갔다. 서울역 옥상정원에는 분위기 있는 카페와 정원이 잘 꾸며져 있었고 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는 광화문뿐만 아니라 경복궁 근정전과 청와대까지 내려다볼 수 있었다. 고속버스 터미널 10층 옥상에도 올라가 보았다. 그런데 10층까지 올라갈 일은 없었다. 이곳에 제법 큰 식당이 두 곳이나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신기하게도 성당도 있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은 출퇴근 길에 반드시 지나치는 곳이다. 그런데 100대 이상의 버스들이 주차되어 있거나 드나드는 모습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것은 처음이었다.      

역사박물관에서 본 광화문
고속버스터미널 옥상에서 본모습


소설가 테드 창은 ‘만약 학생들로 하여금 누구나 다 읽어봤을 법한 에세이를 쓰게 만들지 않으면, 아무도 읽은 적이 없는 에세이를 결코 쓸 수 없다.’라고 했다. 이것은 진부한 글을 쓰는 연습을 거친 후에야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그동안 진부한 사진 찍기를 경험하지 않은 채 독창적인 사진만 고집해 왔었다     


더운 여름에 잘 알려진 서울의 야경 출사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나에게 몇 가지 즐거움을 주었다. 한적한(높은 기온 탓인지 출사 장소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곳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1시간쯤 사진에 몰두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과 마음이 기분 좋게 지친다.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면 꿀 같은 숙면에 빠져든다. 그동안 맹숭맹숭했던 나의 몸속에 있는 사진 세포들이 다시 활력을 찾는 게 느껴졌다.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설레기까지 한다. 삼각대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출사 나가는 나를 보고 아내가 한마디 한다.     


“당신 바람났수??”

“응!” 내가 입을 다문채 작은 소리로 답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곳을 피한다. 긴 줄보다는 짧은 줄을 선호한다. 더운 여름에 서울 야경을 촬영하는 것은 진부하면서도 짧은 줄이다. 오늘도 나는 고속버스터미널 10층 옥상에서 진부한 훈련 중이다.




* 이 글은 2024년 8월 17일에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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