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세 개가 매끈한 바닥 위에서 힘차게 돈다. 구석에 한 팽이가 쓰러진 채로 놓여 있다. 돌고 있던 세 개의 팽이가 번갈아 가며 넘어진 팽이와 계속해서 부딪힌다. 넘어져 있던 팽이는 비틀거리며 일어났고 부딪힘에 힘입어 어느새 다른 팽이들과 거의 같은 속도로 돌기 시작한다. 2주 전쯤 이런 내용의 유튜브 쇼츠를 보았다. 그때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다음 날부터 그 영상이 가끔 떠오르더니 ‘아, 그렇구나!’ 하는 깨우침을 하나 얻었다. 내가 바로 그 넘어져 있던 팽이였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족한 면이 많았다. 몸이 약했고 공부도 시원치 않았다. 주변의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의 가르침과 격려 덕분에 일어서서 돌게 되었다. 상급 학교로 진학할 때마다 나는 부족한 팽이였고 직장, 모임 등에서도 그랬다. 다행히 나보다 빠르게 그리고 바른 방향으로 돌아가는 팽이들을 계속 만났을 뿐이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나보다 더 나은 팽이들을 찾아다녔던 여정이었다. 잘 도는 팽이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것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팽이와 사람들의 차이점을 생각해 본다. 잘 돌고 있는 팽이가 누워있는 팽이에 부딪히면 누워있는 팽이는 일어나서 돌기 시작하고 잘 돌고 있는 팽이는 속도를 조금 잃는다. 사람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누군가를 격려했을 때 상대방이 힘을 얻으면 나도 힘을 얻는다. 상대방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나도 힘을 잃는다. 이는 평생 해오고 있는 강의에서 수없이 경험한 바이다.
현대 리더십 이론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워렌 베니스는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 속에서 자란다."라고 했다. 이 말은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아야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사람 사이의 부딪힘을 꺼려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 자리를 SNS, AI 등이 차지한다. SNS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AI를 찾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만큼 쓰러진 팽이를 잘 일으킬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세월이 지나면서 살기는 편해졌지만 쓰러진 팽이는 더 늘어나고 있다.
내 주변에는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모임에 이름을 올려놓고는 있지만 전혀 활동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몇몇 모임에서는 나 역시 그렇다. 그들은 모임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모임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활발하게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누워있는 팽이에 힘을 나눠주는 싱싱한 팽이들과 같다. 반응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하거나 글을 쓰는 것은 기운이 빠지는 일이다. 누워있는 팽이는 일어나 돌거나 그 팽이판을 떠나는 것이 전체를 위한 길일 수 있다.
지난주 수업에서 팽이에 관한 유튜브 이야기를 했다. 그 영상을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다고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연구실에 돌아오니 과목 단톡방에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내가 보았던 바로 그 영상이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수업 후에 검색해 보았다는 사실에 기뻤다.
요즘은 나는 사람들로부터 '정년퇴임 후 계획이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나는 지금까지 잘 도는 팽이들이 모여있는 팽이판을 찾아다녔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지만 학교 밖에 있는 넘어진 팽이들에 관심을 둔 적은 드물다. 퇴임 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선배 교수가 생각났다. 그분은 퇴임 교수들을 모아서 중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오랜만에 그분에게 연락해 보아야 하겠다.
쓰러져 있던 팽이 하나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