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전의기량 Sep 21. 2021

마음의 문

고집불통 엄마의 어른 연습

엄마가 밤새 잠을 안 주무시고
도둑이 올까 지키고 계셨었어요.

작년 10월, 엄마를 간호해 주시던 간병인  여사님께서 엄마가 잠을 주무시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며 전화로 자신의 상황에 대해 전하려 하셨었다. 간병인 여사님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잠을 청하지 않았던 엄마는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작년 추석  엄마는 뇌경색 발병 후, 재활병원에 입원에 있었는데 겉으로 봤을 땐 보통  뇌병변 환자들보다 병환 상태가 나쁘지 않았기에  간병인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각 외로 단기간에 잦은 낙상이 생기니 직접 보지 않은 상황에서는 병원의 간호체계도 의심스러워 나는 명절에 간호를 위해 엄마의 재활병원에 들어갔었다.  명절 기간 동안 엄마를 지켜본 결과,   엄마는 마비는 왔지만 혼자 일어서고픈 의지도 강했다.  중요한 건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인지 기능이 저하되고 있었던 것이다.   뒤돌아 서면 배고파하고  수십 개의 전화번호와 생일등을 기억하던 엄마는 머릿속을 깨끗이 지우고 있었다.    깨끗이 지워져 버린 엄마의 머리에는 짤막하게 최근의 단편적인 기억만 존재할뿐이다.  거기에  병원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룰이나 기억해야 할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가면 얼마 있지 못하고 빠져나오게 된다.   명절은 끝나가고 아이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기에  간병인 여사님께 엄마 간호를 부탁드렸지만 편한 사람과 편하지 않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 분명했던 엄마의 간호는 순탄하지만 못했다.



한쪽 귀가 안 좋은 모녀

아픈 엄마를 보며 불현듯 나의 지난시절이 스쳐 지나간다.  엄마와 나는  아빠에게 맞아서 귀가 안 좋아지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나와 엄마는 귀가 안 좋아지게 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단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아픔을 겪었을 뿐인데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내 아픔을 누가 알까 두려워했다.   일 처리하는데 혹여 내가 듣지 못해서  나 때문에 문제가 생길까  두려웠고 아이 엄마가  되어서는 내 아픔이 아이 가는 길에 발목이 잡히지 않을까 두려웠다.  누가 불렀을 때 못 듣게 되면 죄송스러웠고  안 좋은 귀로 들어야 하기에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었다. 내 자신을 보호하려하기 보다  돈을 벌어서  지켜야 할 것이 있었기에 남에게 내 아픔을  감춰야만 했고 모든것이 완벽해야 한다며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했다.


한 번은 원안과 다르게 일처리가 진행되어 혼난 적이 있었다. 무언가 업무상황을 회사에서 전달받았을 때도 못 들었으면 못 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욕을 먹을지언정 제대로 알 때까지 들으면 되는 것인데  못 들었다고 다시 설명해 달라고 하면  나 때문에 다시 얘기해야 하는 상대방 얼굴에서 묻어나는 표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비슷한 상황은 여러 번 발생했었지만  내 상황을 충분히 상대방에게 설명하지 못해 생겼던 건 자연스레 내 몸에 찾아오는 스트레스로 남게 될 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 안의 틀에 나를 가두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한 번은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데 너무 내 얘기만 하는 나에게 친구와 얼굴을 붉힌 적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났을 땐 보통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자기  인생사를 풀어놓고는 한다. 대부분 친구를 만나 술자리에 인생사를 풀게 되면 대단한 해답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공감하며 맞장구 쳐주기를 바라는데 정색하고 해결책을 이야기하는 내가  친구는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픔과 슬픔을 겪고 한 발자국 뒤에 서서 보니 나는 귀가 안 좋아서 못 들었던 것이 아니라 나는 귀가 안 좋아 라는 내 안의  고정관념 틀에 나를 가두고 있었다.  내 안의 나를 가두고 인정 하려하기 보다 피하려고만 하니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대면보다 비대면으로 소통하는 것이 늘어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 입장에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내 안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과 함께 하는 대화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데  아픔이 있다고 피하지 말자.  아픔은 그냥 아프지 않는 방법을 몰라서 다른사람 보다 먼저 아팠을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피하려고 하면 피할수록 안 좋은 일로 돌아올 뿐 남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픔을 피하기보다 마음의 문을 열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 준다면   
아픔도 당당하게 이겨내어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틀림과 다름의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